사문난적
제목 | 사문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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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斯文亂賊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조선 후기 유교 경전을 이해함에 있어서 주희(朱熹, 1130~1200)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며 일컫는 말.
[내용]
‘사문(斯文)’이란 사전적으로 보면 ‘이 문화’라는 뜻이다. 논어에도 등장하는 이 말은 공자가 익히고 계승한 주(周) 왕조의 학문과 전통을 뜻하며, 공자가 경전으로 편집하여 전수한 고대의 저작을 가리킨다. 이후 ‘사문’ 그 자체로 유교의 도리, 유학자 등을 지칭했다. 그러므로 사문난적이란 유교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역적이라는 뜻이다.
사문난적이라는 말은 성리학적 명분론이 심화되어 간 조선 후기에 많이 사용되었다. 17세기 이후 청나라에서 고증학을 비롯한 다양한 사조가 유행했던 것과 달리 조선은 성리학적 명분론이 점차 강화되었다.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비롯한 노론에서는 성리학적 의리를 실현시켜 흐트러진 사회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주희의 경전 해석을 비판하거나 주희와 다른 새로운 경전 해석에 대하여 ‘사문난적’이라고 공격하였다.
남인 윤휴(尹鑴)가 주희의 주석에 의심을 보이며 독자적으로 경전을 해석하자 서인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공격하였다. 소론 박세당 역시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하여 같은 공격을 받았다. 윤휴를 강경하게 비판했던 송시열을 따르는 사람들이 노론이 되었고, 윤휴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인 윤선거와 윤증 부자를 따르는 이들은 소론이 되었다.
주희의 경전 해석이나 송시열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에도 ‘사문난적’으로 공격받았다. 이는 학문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성리학 교조주의이자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사문난적’이라는 비판은 결국 타자(他者)를 인정하지 못하는 배타성에서 나오며, 이는 사회를 더욱 경직화시켰다.
▶ 관련자료
- ㆍ사문난적(斯文亂賊)
- 사료로 보는 한국사 국문: 위정 척사 운동-영남 만인소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성리학의 절대화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