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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공 작전

제목 서울 진공 작전
한자명 서울進攻作戰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08년 1월 13도 의병연합군이 서울 탈환을 목표로 진행한 전투 작전.

[내용]

1907년 한일 신협약(韓日新協約) 강제 체결 이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해산 군인 가운데 일부가 의병에 참여하여 대일 의병 항쟁은 더욱 체계화되었다. 분산되어 있던 의병 부대 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일제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한 연합이 추진되었다. 관동 의병대장 이인영(李麟榮, 1868~1909)이 중심이 되어, 전라, 충청, 경기, 강원, 평안, 함경도 등 13도 의병 부대가 양주에 집결했다. 이들은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삼고 13도 의병 연합군을 조직하였다. 의병 연합군은 서울로 진격하여 통감부를 타격하고 일본과 맺은 조약의 파기, 친일 정부의 축출 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1908년 1월에 군사장 허위(許蔿, 1854~1908)가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접근하였다. 하지만 후발 의병 부대가 도착하기 전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격전 끝에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동시에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상을 이유로 귀가하면서 군사장 허위에게 이후의 일을 위임하고 의병을 중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로써 작전은 실패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집결한 의병 부대는 본래의 활동 근거지로 돌아가야 했다.

서울 진공 작전은 여러 곳으로 분산되어 있던 의병 부대가 최초로 전국적인 연합 작전을 펼친 사건이었으나 여러 한계를 보이며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의병 투쟁은 계속되었다.

▶ 관련자료

ㆍ서울 진공 작전(서울進攻作戰)
ㆍ13도 창의군(十三道倡義軍)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