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러 수호 통상 조약
제목 | 조러 수호 통상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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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朝露修好通商條約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조선, 러시아 |
유의어 | 조로 수호 통상 조약(朝露修好通商條約), 조러 수호 조약(朝露修好條約), 조로 수호 조약(朝露修好條約), 조러 조약(朝露條約), 조로 조약(朝露條約), 조러 통상 조약(朝露通商條約), 조로 통상 조약(朝露通商條約), 한러 수호 통상 조약(韓露修好通商條約), 한로 수호 통상 조약(韓露修好通商條約), 한러 수호 조약(韓露修好條約), 한로 수호 조약(韓露修好條約), 한러 통상 조약(韓露通商條約), 한로 통상 조약(韓露通商條約), 한러 조약(韓露條約), 한로 조약(韓露條約), 조러 수호 통상 조약(Treaty of friendship and Commerce Between Russia and Corea), 조러 조약(Treaty Of Seoul, With Russia(1884)), 조러 조약(Russia–Korea Treaty of 1884) |
별칭•이칭 |
[정의]
1884년(고종 21) 조선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조약.
[내용]
1860년(철종 11) 러시아는 청과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여 연해주를 획득하면서 두만강을 경계로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비롯하여 서양 국가들과 교섭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조선 정부의 쇄국 정책과 연해주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러시아 정부의 태도로 인하여 양국 사이에 공식적인 교섭은 없었다. 또 1870년대 후반 청의 이홍장(李鴻章)은 조선 정부에게 러시아의 침략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고, 1880년 일본에 제2차 수신사로 파견되었던 김홍집(金弘集)은 주일 청국 공사관 참찬관 황준헌(黃遵憲)으로부터 『조선책략(朝鮮策略)』을 받아 왔는데, 그 책의 내용 역시 러시아의 침략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882년(고종 19) 5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되자 러시아 역시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고 청국 정부에 주선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여타 서양 국가들과 달리 자국이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해상 무역뿐만 아니라 육로 무역에 관한 규정을 추가로 조약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청국 정부는 러시아의 이러한 요구를 반대했고, 조선 정부 역시 육로 통상에 관한 규정을 조약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에 조약은 체결되지 못하였다.
1883년 11월 영국과 독일이 조선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자 1884년 초 러시아 역시 조선과 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다시 나섰다. 이미 청국이 조선과의 조약 체결을 중재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러시아 정부는 직접 조선과 조약을 체결하기로 하였다. 이에 협상을 맡은 천진 주재 러시아 공사 베베르(Karl Ivanovich Wäber, 1841~1910)는 조선에 외국인 고문으로 파견된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 1848~1901)의 도움을 받아 조약 체결에 성공하였다. 당시 조선 정부는 청의 과도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고, 묄렌도르프 역시 조선의 정세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판단하여 베베르에게 협조하였기에 가능하였다. 그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으로 인하여 러시아를 끌어들여 영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러시아는 계속해서 육로 무역 규정을 명문화한 조약을 체결하고자 했으나 조선이 거부하자 육로 통상 조약을 연기시키기로 하고, 결국 영국, 독일이 체결한 조약과 동일한 내용으로 1884년 7월 7일 조러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했다.
▶ 관련자료
- ㆍ조러 수호 통상 조약(朝露修好通商條約)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연해주 지역으로의 이주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