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업회
제목 | 권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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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勸業會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러시아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911년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조직된 한인 자치 단체이자 독립운동 단체.
[내용]
권업회는 국권 상실 이후 연해주 한인 사회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새롭게 결성한 한인 자치 결사였다. 1911년 5월 19일 김익용(金翼瑢), 강택희(姜宅熙) 등을 중심으로 권업회 창립 발기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58명의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권업회를 창립하였다. 초대 회장에는 최재형(崔才亨), 부회장에는 홍범도(洪範圖)가 선임되었다. 권업회는 대외적인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러시아 당국의 공인을 받았다. 이후 1911년 12월 다시 총회를 개최하여 조직을 정비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권업회는 연해주 한인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독립운동을 추진하여 조국 독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권업회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권업회는 산하에 신문부를 설치하고 기관지 〈권업신문(勸業新聞)〉을 간행했다. 당시 〈권업신문〉에는 주필 겸 신문부장이었던 신채호(申采浩)를 비롯하여 장지연(張志淵), 정순만(鄭淳萬), 이강(李剛) 등 저명한 항일 운동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연해주 각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주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새로운 후진 양성을 도모하였다. 한편 권업회는 실업부와 구제부를 두고 연해주 지역 한인들의 경제 활동을 권장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인 농민들을 이주시켜 새로운 개척지를 만들었으며, 거주권이 없어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한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활동을 병행하였다.
권업회는 연해주 지역에서 한인 이주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사업을 전개했지만,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일제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러시아 당국에 의해 1914년 8월 강제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