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제목 | 파시즘 |
---|---|
한자명 | fascism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
유의어 | 전체주의(totalitarianism) |
별칭•이칭 |
[정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나타난 대중 정치와 대중 동원에 기초하여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 정치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정치적 행동이자 체제.
[내용]
파시즘은 1919년 3월 23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1945)가 주도해 결성한 단체인 ‘이탈리아 전투 파쇼’의 탄생에서 출발했다. 좁은 의미에서 파시즘은 1⋅2차 세계 대전 사이에 무솔리니가 이끈 이탈리아의 정치 운동과 그 체제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 개념은 독일의 나치즘에도 적용되었고, 이후 여러 국가에서 나타났던 독재적 정치 체제, 경제⋅사회 사상을 총칭하는 것으로도 확대되었다. 일부에서는 파시즘을 ‘일상적 파시즘’과 같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적이고 폭압적인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모호한 개념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파시즘에 대한 과도한 확대 해석으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파시즘과 그 운동에 대한 이해를 간과하게 만드는 비역사적 주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에서 만성적 공황에 따른 사회 경제적 어려움과 전승국 및 패전국을 막론하고 정치사회적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두되었다. 유럽에서는 전쟁과 사회 경제적 위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진 다수의 청년 학생들이 배출되었고, 전쟁의 종결과 함께 사회로 돌아온 많은 퇴역군인들 중 상당수는 제대로 된 일자리와 경제적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들이 파시즘의 저변을 형성하였다. 특히 파시즘의 전형이 된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는 전쟁의 피해가 컸고, 민족 공동체가 파국에 처했다는 위기감이 증대되었다. 파시스트들은 이 위기를 인간 혁명과 민족 혁명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대중 동원을 통한 혁명적 방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은 19세기의 보수주의적 민족주의와 차이가 있었다. 보수주의적 민족주의가 근대화로 훼손된 과거 민족 공동체로의 복귀를 지향한다면, 파시즘은 근대화를 민족 재생을 위한 변화의 기회로 삼았다.
파시즘은 1920년대 말 세계 대공황을 계기로 현실 정치에서 힘을 얻었다. 파시즘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등 기존의 서구적 가치는 물론 공산주의 등도 국가 타락과 분열, 쇠퇴의 원인으로 보며 모두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황 속에서 파편화되고 가난해진 개인에게 강력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부여하려 했다. 이를 위해 효율성이 강조되었고, 일당 독재와 히틀러 및 무솔리니 같은 절대 권력자의 지배를 추구했다. 또한 새로운 인간을 개조하려는 기획 아래, 개인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민족 공동체를 타락하게 만든 ‘병균’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유태인, 집시 학살과 같은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기도 했다.
파시즘 체제의 주요 요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거론된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 그 지도자로 구현되는 국가, 그 국가를 떠받치고 대중을 동원하는 임무를 지닌 유일 독재정당, 이 정당이 중심이 되어 전 인구를 규율하고 동원하는 각종 조직,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협력을 강제로 강요하고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 조직 등이다. 이러한 체제를 형성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파시즘 국가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동원해 광범위한 상징 조작과 이미지가 생산되었고, 각종 의례와 의식을 통해 대중들에게 파시즘 체제를 각인시키려 했다. 파시즘은 반자유주의와 반공산주의를 내세우면서 기존 체제의 파괴를 주장하고 추진했지만, 기존 정치 및 경제적 권력을 갖고 있던 상당수 보수 세력과 일정하게 동맹 관계를 유지하였다. 보수 세력은 공산 세력의 혁명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파시즘 세력과 동맹하였고, 파시즘 세력은 이들의 협력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1930~1940년대 일본의 경우 강력한 지도자 및 유력 정당의 부재, 대중 조직의 취약성 등을 이유로 파시즘 체제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신성화된 천황제, 메이지 시대 이래 일본 특유의 분권적 권력 구조와 독립된 군부 세력, 미약한 정당 정치 세력 때문에 서구와 같은 파시즘 체제가 성립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일본은 국가 개조를 표방하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국가가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해 국민 동원을 위로부터 강제로 조직하고, 일체의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을 억압하면서 독재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질서를 만들어가려 했던 점에서 파시즘적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일본 특권 세력과 보수 세력은 일본 내 파시즘 세력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막을 내렸지만, 파시즘 사상과 현상은 극복되고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인종주의와 인명 경시, 극단적 민족주의와 민족적 차별, 과도한 지역주의와 지역적 차별,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를 이유로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및 권리 부정, 합리주의 및 합리적 사유와 인식 부정, 전체적이고 독재적인 체제에 대한 향수와 지향 등 과거 파시즘이 보였던 모습과 행동이 소련을 비롯한 세계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하고 해체되었음에도, 21세기 들어 변형된 형태로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재생되고, 심지어 세력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 및 우파 정치 세력들이 눈앞의 이해를 위해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이들 재생되고 변형된 파시즘적 세력을 협조하고 지원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에도 파시즘이 지배하던 시기와 같은 상황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 관련자료
- ㆍ전체주의(全體主義)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1] 근⋅현대의 세계
- ㆍ파시즘(fascism)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1] 근⋅현대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