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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제목 승정원
한자명 承政院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후원(喉院), 은대(銀臺), 대언사(代言司), 정원(政院)
별칭•이칭

[정의]

조선 시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는 동시에 국왕을 보좌하는 비서 역할을 담당했던 관서.

[내용]

조선은 건국 직후 고려 시대에 왕명 출납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중추원(中樞院) 제도를 이어받아 중추원 소속 관서로 승지방(承旨房)을 설치했다. 1400년(정종 2) 관제를 개편하면서 중추원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로 개칭하고 왕명 출납 기능을 분리해 별도로 승정원을 설치했다. 이 조치에 따라 중추원 승지(承旨)의 명칭을 승정원 승지로 고쳤고, 중추원 당후(堂後)의 명칭도 승정원 당후로 변경했다. 그리고 도승지(都承旨)를 승정원의 책임자로 배치했다.

1401년(태종 1) 의흥삼군부가 다시 승추부(承樞府)로 개편되면서 승정원의 기능도 다시 통합되었다. 그리고 승정원의 명칭은 대언사(代言司)로 개칭되었다. 이 조치에 따라 도승지의 명칭을 지신사(知申事)로, 승지의 명칭을 대언으로 고치게 되었다.

1405년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은 6조의 기능을 강화하면서 승정원을 다시 복설하였는데, 이때 6조에서 올라오는 보고의 전달과 왕명 출납 업무를 나누어 맡도록 6대언을 두었다.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대에도 이 체제를 이어 승정원에 소속되어 있는 승지는 모두 6명이었다. 승정원의 최고 책임자였던 도승지를 중심으로 좌승지⋅우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동부승지 한 명씩 배치되었다. 이 직책들은 모두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이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직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반영되었다.

6명의 승지는 6조 가운데 한 관서를 담당하여 해당 관서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을 왕에게 전달하였으며, 왕이 내리는 명령 역시 승정원을 거쳐 각 관서로 전달되었다. 또한 승지들은 각각의 전담 업무와 관련된 사안을 국왕과 상시적으로 논의했다. 이 외에도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과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과 여러 제조직(提調職)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승지들은 자신들의 업무와 관련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제작했다. 6승지 아래에는 정7품 주서 2인을 두었는데, 이들의 주요 업무는 매일 2회 국왕이 대신들과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 대화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승정원일기』는 현장에서 기록하고 매월 책으로 만들어 보관하였으므로, 왕의 사망 이후에 기록을 취합하여 정리하고 축약하는 실록에 비하여 그 서술이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지만 임진왜란과 1623년(인조 1) 이괄(李适)의 난 등으로 인해 해당 시기의 자료는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인조(仁祖, 재위 1623~1649) 대 이후의 기록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승정원은 조선 후기까지 국정 운영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승선원(承宣院), 1895년 다시 비서감(秘書監)으로 바뀌면서 점차 그 위상과 조직이 축소되어 갔다.

▶ 관련자료

ㆍ대언사(代言司)
ㆍ승정원(承政院)
ㆍ은대(銀臺)
ㆍ정원(政院)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