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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제목 의병
한자명 義兵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의군(義軍), 의졸(義卒), 민병(民兵), 촌병(村兵)
별칭•이칭

[정의]

국가에 외적 등이 침입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 스스로가 조직해서 결성했던 민간군.

[내용]

의병은 외적의 침입이 발생했을 때, 국가의 명령이 없더라도 자발적으로 군사 조직을 갖춰 전쟁 활동에 나서는 민간 군사 조직의 총칭이다. 의병 역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군사 조직이라는 성격과 목적은 정규군과 같다. 하지만 백성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결성되는 부대이기 때문에 조직의 구성이나 활동 등에서 정규군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사에서 의병의 결성과 활동은 삼국 시대는 물론 고려 시대에도 확인할 수 있지만 가장 많은 활동이 기록되어 있는 시기는 조선 시대였다. 가장 활발한 의병 활동이 나타났던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발생한 시기였다. 특히 임진왜란 초기에는 관군만으로 외적을 방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삼남(三南)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이 일어나 큰 활약을 했다.

임진왜란 당시 대표적 의병장으로는 곽재우(郭再祐)⋅고경명(高敬命)⋅조헌(趙憲) 등이 있다. 곽재우가 통솔하는 의병은 경상도 의령군 정암진(鼎巖津)에서 일본군의 전라도 진격을 저지했으며, 경상우도 전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고경명은 금산(錦山) 전투에 참여한 뒤 다시 진주성 2차 전투에 참여했다가 전사했다. 조헌은 충청도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차령(車嶺)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청주성을 수복하는 등의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일본의 대군에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정묘호란의 대표적 의병장에는 정봉수(鄭鳳壽)가 있다. 그는 의병을 모집하여 용골산성(龍骨山城)을 방어하면서 전공을 세웠고, 피난 왔던 조선의 백성들을 보호했다.

의병부대에는 양인(良人)과 천인(賤人)은 물론 양반 출신의 전직 관료와 낮은 신분의 인물들이 함께 소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의병 활동을 통해 전투나 전쟁에 참여할 당시에는 계급이나 신분의 차이가 평소보다 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병장은 주로 문반 출신의 전직 관원들이 맡는 사례가 많았다. 무인 출신들은 의외로 소수였으며, 높은 덕망으로 출신 지역에서 존경 받았던 유생들이 의병장을 맡기도 했다.

▶ 관련자료

ㆍ의병(義兵)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