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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론

제목 여전론
한자명 閭田論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주장한 전제 개혁론.

[내용]

조선 후기에는 토지가 일부 계층에게 편중되면서 경작지를 소유하지 못하는 농민들이 증가하였다. 이에 정약용은 토지 소유를 재편하여 농민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안정적으로 경작할 수 있도록 여전론을 제시했다. 정약용은 여전론을 제시하며 이전의 한전제(限田制), 균전제(均田制) 등 토지 개혁안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정약용은 농촌을 새로운 공동체를 설정하여 이에 따라 재편성할 것을 주장하였다. 당시 정약용이 제시한 단위는 ‘여(閭)’인데 일정한 자연지물을 경계로 그 안의 대략 30호(戶) 정도를 ‘1여’라고 정의했다. 본래 주(周)나라에서는 25가(家)를 1여로 규정한 것과 차이가 있다. 정약용이 상정한 ‘1여’에 ‘여장(閭長)’이라는 지도자를 두고 그 휘하의 ‘여민(閭民)’은 공동의 토지에서 공동 경작을 하도록 계획되었다. 여장은 여민의 노동량을 ‘일역부(日役簿)’라는 장부에 기록하여 두었다가 추수 후에 장부에 기록된 노동량에 따라 수확물을 배분한다는 내용이다. 정약용은 이와 같은 부의 분배 방식을 통해 토지 소유에 따라 부가 편중되는 조선 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여장’은 군사적 지휘 능력도 발휘할 수 있어 이상적인 병농일치(兵農一致)를 구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제는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지배층을 유지한 채 새로운 공동체를 재편해야 하므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기득권층의 특권과 재산을 해체할 제도적 방안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관련자료

ㆍ여전론(閭田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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