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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제목 여진
한자명 女眞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고려, 조선, 금(金), 청(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만주(滿洲)의 동쪽 지역과 해안 지방에 부족 단위로 모여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

[내용]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숙신(肅愼), 한(漢) 시대의 읍루(挹婁),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물길(勿吉), 수(隋)⋅당(唐) 시대의 말갈(靺鞨)과 같은 계통의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 일대 및 송화강(松花江)⋅목단강(牧丹江)⋅흑룡강(黑龍江) 유역 등 만주의 동쪽 지방 등에 부족 단위로 모여 살았다.

고려 시대에는 발해의 구성원이었던 말갈족이 만들었던 흑수부(黑水部)를 여진으로 지칭했고, 이들은 흑수말갈로도 불렸다. 당시 거란의 지배를 받으면서 두만강 유역과 함경남북도 일대에 모여 살았던 여진은 흑수여진⋅동여진(東女眞)⋅생여직(生女直) 등으로 불렀고 압록강 유역의 여진은 서여진(西女眞)⋅숙여직(熟女直) 등으로 불렀다. 여진은 1115년 금(金)을 건국하고 거란을 멸망시킬 정도로 힘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금이 몽골에게 멸망당한 후 다시 부족 단위의 집단을 이루면서 생활했다. 이후 원(元)을 대신해 중원을 지배했던 명(明)은 만주 지역의 여진 부락에 위소(衛所)라는 군사 거점을 세워 이들을 지배하고자 했다. 건주위(建州衛)⋅모련위(毛憐衛)⋅해서위(海西衛) 등의 명칭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조선은 이들을 여진, 여직 혹은 야인(野人)으로 불렀다. 이들은 그 근거지에 따라 건주여직(建州女直)⋅건주야인⋅야인여직(野人女直) 등의 명칭이 파생되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만주 지역에 큰 관심을 가지고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이 같은 관심이 점차 줄어들었고, 이 틈을 타 여진 세력들이 힘을 다시 모으면서 건주여진을 중심으로 후금(後金)을 건국하게 되었다. 후금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중국을 통치했다.

▶ 관련자료

ㆍ건주여진(建州女眞)
ㆍ노적(奴賊)
ㆍ동여진(東女眞)
ㆍ만주족(滿洲族)
ㆍ야인(野人)
ㆍ여진(女眞)
ㆍ여진족(女眞族)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