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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제목 열하일기
한자명 熱河日記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청(靑)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 기록한 중국 기행문.

[내용]

청나라와 교섭하면서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행문을 ‘연행록(燕行錄)’이라고 한다. 베이징(北京)은 고대 중국 연(燕)나라의 도읍이어서 베이징을 ‘연경(燕京)’이라고도 불렀는데, 연행록은 연경까지 다녀온 기록이라는 뜻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의 수많은 연행록 중에 가장 뛰어난 저술로 유명하다. 1780년(정조 4)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인 건륭제(乾隆帝)의 칠순 잔치를 기념하기 위한 외교 사절단과 함께 청나라에 방문하였다. 박지원은 직무 수행에서 자유로운 비공식 수행원인 ‘자제군관(子弟軍官)’의 자격으로 청나라를 방문하였기 때문에 청나라의 문물을 더욱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었다.

사절단의 원래 목적지는 베이징이었으나 건륭제가 갑작스럽게 이궁(離宮)이 있는 열하(熱河)로 초청하면서 박지원도 그 이전에 조선 사절단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열하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열하는 베이징에서 230km 떨어진 하북성(河北省)의 국경 요지로, 청의 황제는 이곳에 ‘피서산장(避暑山莊)’이라는 거대한 별궁을 짓고, 몽골⋅티베트⋅위구르 등의 외교 사절을 접견하였다. 여기에 온 조선 사절단은 티베트 불교의 2대 지도자인 판첸라마를 직접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했는데 이때의 기록은 『열하일기』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청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견문을 전하면서, 이에 따른 자신의 실학사상을 피력하였다. 이때 박지원은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조선의 낙후성을 타개하기 위해 중국의 선진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북학론(北學論)’을 주장하였다.

『열하일기』는 당시의 국제 관계, 청나라의 실정, 실학의 흐름 등 역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며, 「호질(虎叱)」, 「허생전(許生傳)」 등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이야기와 정교한 세부 묘사 등으로 문학사적으로도 높은 의의를 갖는다.

▶ 관련자료

ㆍ열하일기(熱河日記)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