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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사건

제목 거문도 사건
한자명 巨文島事件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 영국, 러시아, 청(淸)
유의어 거문도 점령 사건(巨文島占領事件)
별칭•이칭

[정의]

1885년 4월부터 1887년 2월까지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내용]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러시아는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남하를 시도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러시아는 1860년도에 블라디보스토크를 확보하였지만 이 역시 완전한 부동항은 아니었으므로 계속해서 부동항을 획득하고자 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가 자국의 식민지를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막고자 했으며, 이로 인해 양국은 세계 도처에서 대립하였다. 양국의 대립은 1885년 3월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전쟁 발발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와 같이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영국은 조선이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조선은 갑신정변 이후 청의 간섭이 심해지자 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에 군사 교관 파견 등을 요청하며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러시아도 조선에서 부동항을 획득할 목적으로 조선 정부의 요청에 응하였다. 양국은 조선에 러시아 군사 교관을 파견하는 것과 러시아에 영흥만 조차(租借)를 허락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조약을 체결하려 교섭했다.

러시아가 영흥만을 조차하여 극동에서 군사 거점을 확보하려 한다고 판단한 영국은 그 대응책으로 조선 정부와 어떠한 사전 협의도 없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뒤늦게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확인한 조선 정부는 영국 정부에 항의했다. 또 러시아를 비롯하여 조선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던 청, 일본 역시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하는 한편 사건 해결에 나섰다. 청의 이홍장(李鴻章)은 거문도에서 영국군을 철수시키고자 영국 정부와 교섭을 벌였다. 하지만 영국은 거문도에 포대와 병영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으로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영국과 러시아 간에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타결한 협정이 체결되어 양국 간의 긴장이 완화되면서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할 명분이 사라졌다. 영국은 청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조선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은 후 거문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 관련자료

ㆍ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
ㆍ거문도 점령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