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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 마립간

제목 내물 마립간
한자명 奈勿麻立干
유형
시대 삼국 시대
관련국가 신라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356년에서 402년까지 재위한 신라 제17대 왕.

[내용]

1. 가계와 즉위

성은 김씨(金氏)로 구도 갈문왕(仇道葛文王)의 손자이며, 각간(角干) 말구(末仇)의 아들이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 「왕력(王歷)」 편에는 구도 갈문왕의 아들이라는 기록도 있다. 어머니는 휴례 부인(休禮夫人) 김씨이고, 왕비는 미추 이사금(味鄒尼師今, 재위 262~284)의 딸인 보반 부인(保反夫人) 김씨이다. 신라에서 김씨 중 최초로 왕위에 오른 이는 제13대 왕인 미추 이사금이다. 미추 이사금의 아버지는 구도 갈문왕이며, 말구는 미추 이사금과 형제였다. 내물 마립간(奈勿麻立干)과 미추 이사금의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둘이 가까운 혈연 관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왕이었던 흘해 이사금(訖解尼師今, 재위 310~356)은 석씨(昔氏)였다. 그가 죽고 후계자가 없어 내물 마립간(奈勿麻立干)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2. 왕호 문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호를 이사금으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마립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내물 이후 김씨가 왕위를 독점하는 점, 내물의 재위 시기인 4세기 중반 이후 신라의 수도 경주(慶州)에 강력한 정치 권력의 등장을 암시하는 거대 고분이 집중적으로 축조되는 점 등을 볼 때, 그의 재위 시기부터 이전보다 강력한 왕권이 갖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연장자의 뜻이 강한 이사금보다 강력한 정치 권력자를 의미하는 마립간이라는 호칭이 내물 때부터 사용되었다고 보고, 보통 내물 마립간이라고 칭한다.

3. 내물 마립간 대의 상황

신라에서는 원래 박(朴)⋅석(昔)⋅김(金)의 3성(三姓)이 왕위를 교대로 계승하였는데, 내물 마립간 이후 김씨가 왕위를 독점하였다. 이를 통해 왕권이 크게 강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발전해 나갔으며, 377년(신라 내물 마립간 22년)과 382년에는 전진(前秦)에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라는 백제와 가야, 왜(倭)의 침입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이에 내물 마립간은 왕족인 실성(實聖)을 인질로 보내 고구려와 우호 관계를 맺고 원조를 요청하였다.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 재위 391~413)은 한반도 남쪽으로 원정군을 보내 신라를 구해 주었다. 그 결과 신라는 고구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 관련자료

ㆍ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
ㆍ내물왕(奈勿王)
ㆍ나물마립간(奈勿麻立干)
ㆍ나물왕(奈勿王)
ㆍ나밀왕(奈密王)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