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용어 해설유형별 > 전체

금입택

제목 금입택
한자명 金入宅
유형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통일 신라
유의어 쇠드리댁, 금드리댁
별칭•이칭

[정의]

신라의 수도 경주(慶州)에 있었던 왕족 및 귀족들의 화려하고 큰 저택.

[내용]

삼국 통일 이후 신라의 수도 경주는 크게 번성하여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대의 경주 모습을 묘사한 기록에는, “도성 안에 기와집만 있고 초가집은 한 채도 없으며, 노래와 음악 소리가 길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또 숯으로 밥을 짓고 땔나무를 쓰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신라의 왕경인들이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모습을 비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당시 경주가 얼마나 번성하였는지 잘 보여 준다.

통일 신라 시대 경주에 사는 왕족을 포함한 대귀족들은 매우 부유하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으며, 크고 화려한 집을 많이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화려했던 대저택 39채가 유명한데, 이 저택들을 ‘금을 입힌 집’ 내지는 ‘금이 들어가는 집’이라는 의미로 ‘금입택(金入宅)’이라 불렀다.

우선 왕의 이궁(離宮)이나 왕실 가족의 거주처로 보이는 양택(梁宅)⋅사량택(沙梁宅)⋅본피택(本披宅)⋅한기택(漢岐宅)이 있고, 김유신(金庾信, 595~673)의 조상 집인 재매정택(財買井宅)을 비롯하여 남택(南宅)⋅북택(北宅)⋅우비소택(亏比所宅)⋅지상택(池上宅)⋅북유택(北維宅)⋅남유택(南維宅)⋅대택(隊宅)⋅빈지택(賓支宅)⋅장사택(長沙宅)⋅상앵택(上櫻宅)⋅하앵택(下櫻宅)⋅수망택(水望宅)⋅천택(泉宅)⋅양상택(楊上宅)⋅비혈택(鼻穴宅)⋅판적택(板積宅)⋅별교택(別敎宅)⋅아남택(衙南宅)⋅김양종택(金楊宗宅)⋅곡수택(曲水宅)⋅유야택(柳也宅)⋅사하택(寺下宅)⋅정상택(井上宅)⋅이남택(里南宅)⋅사내곡택(思內曲宅)⋅지택(池宅)⋅사상택(寺上宅)⋅임상택(林上宅)⋅교남택(橋南宅)⋅항질택(巷叱宅)⋅누상택(樓上宅)⋅이상택(里上宅)⋅명남택(椧南宅)⋅정하택(井下宅) 등 35채의 귀족 저택이 기록에 전한다.

[의의]

금입택은 삼국 통일 후 신라 경주가 크게 번성하였으며, 신라의 유력 진골 귀족들이 막대한 부와 세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 관련자료

ㆍ금입택(金入宅)
ㆍ금을 입힌 집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