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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방송국

제목 경성 방송국
한자명 京城放送局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27년 한국에 처음으로 설립된 라디오 방송국으로 일제 식민 통치를 위해 활용된 언론 기관.

[내용]

경성 방송국은 JODK라는 호출 부호로 불렸는데, 1927년 2월 16일 첫 본 방송을 송출하였다. 일본 제국 내에서는 도쿄(JOAK), 오사카(JOBK), 나고야(JOCK)에 이어 네 번째로 개국한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1920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지 7년 만이었다.

개국 당시 경성 방송국은 단일 채널을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 혼용 방송을 하였으며, 방송 출력이 낮아서 서울 일대에만 방송 송출이 가능했다. 라디오 방송은 연속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방송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방송 시간이 되면 다른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경성 방송국은 1932년 조선 방송 협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1933년부터 두 개의 채널을 이용하여 한국어 방송과 일본어 방송을 따로 진행하는 이중 방송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중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 출력을 대폭 증강하고, 전국적인 방송망 확장을 시작하였다. 부산을 시작으로 지방 방송국을 증설하면서 라디오 청취자 수도 점차 증가하였는데, 특히 한국인 청취자의 비율이 빠르게 늘어났다. 개국 당시 1,400대 정도의 라디오 수신기가 보급되었는데, 일제 말기에는 라디오 수신기가 40만 대에 이르렀다.

방송 프로그램은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제 및 조선 총독부 시정에 대한 선전 및 홍보 방송, 조선 전통의 아악(雅樂)을 비롯하여 가요, 방송극 등의 연예 방송, 교양 교육 방송, 그리고 스포츠 중계 등의 보도 방송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 전쟁 이후에는 연예 위주의 방송 편성은 지양되고, 전시 동원과 선전을 위한 도구로 라디오 방송이 적극 활용되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방송이 경성 방송국을 통해 한국 전역에 송출되었다.

▶ 관련자료

ㆍ경성 방송국(京城放送局)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