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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군

제목 대한 독립군
한자명 大韓獨立軍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중국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19년 홍범도(洪範圖, 1868~1943)를 중심으로 북간도에서 조직된 독립군 부대로 봉오동 전투에서 크게 활약한 무장 독립운동 단체.

[내용]

대한 독립군은 포수 출신 의병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홍범도가 사령관을 맡아 조직한 독립군 부대로 당시 병력은 대략 200명 정도였다. 홍범도는 1919년 겨울에 대한 독립군의 보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북간도 한인 사회에서 영향력이 컸던 대한국민회의 산하 부대가 되어 활동하였다.

대한 독립군은 1919년 8월 압록강을 건너 함경남도 혜산진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는 등 독립전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20년 5월에는 대한국민회의 직할 무장 부대 및 최진동(崔振東)이 이끄는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와 제휴하여, 왕청현 봉오동(鳳梧洞)에 근거지를 두고 약 800명의 병력을 거느린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를 창설하였다. 대한 독립군 사령관 홍범도는 북로군 제1사령부장 겸 군사령관을 맡아, 독립군 국내 진공 작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특히 1920년 6월에는 국내로 침공했던 독립군 부대를 추격하던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유인하여 대파하는 큰 성과를 얻었다. 이 전투를 봉오동 전투라고 하며, 독립군 부대가 얻은 큰 전과였다.

계속되는 독립군의 국내 진공을 진압하기 위해 1920년 10월 일제는 대규모 정규군을 간도 지역에 출병시키고 수천 명의 한인을 학살한 ‘간도참변(경신참변)’을 일으켰다. ‘간도참변’이 일어나자, 다른 독립군 부대와 마찬가지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도 일본군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피해 북상하여 흑룡강성의 밀산(密山)으로 이동하였다. 이는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일본군 정규 부대와의 정면 대결보다는 군사 역량을 유지하려는 결정이었다.

밀산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 독립군을 비롯하여 김좌진(金佐鎭)의 북로 군정서, 안무(安武)의 국민군 등 2천여 명의 독립군이 연합하여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두만강 상류 화룡현에서 5천여 명의 일본군을 격퇴하는 전과를 얻었다. 6일간에 걸친 장시간의 전투와 2배가 넘는 일본군에 큰 타격을 준 이 전투가 독립군전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투로 거론되는 청산리 대첩이다. 그 후 대한 독립군은 밀산에 집결한 독립군 부대가 통합하여 조직한 대한 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에 합류하였다.

▶ 관련자료

ㆍ대한 독립군(大韓獨立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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