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용어 해설유형별 > 전체

북촌/남촌

제목 북촌/남촌
한자명 北村/南村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의 청계천을 경계로 청계천 이북의 조선인 거주 지역과 이남의 일본인 거주 지역을 구분하기 위한 용어.

[내용]

조선 시기 북촌과 남촌이란 용어는 대체로 정치 세력이었던 붕당 사이의 거주지를 구분하는 말이었다. 유학자 황현(黃炫,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종각 이북 지역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았고, 그 남쪽 지역을 남촌이라 부르고 소론과 남인 등이 섞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북촌과 남촌 용어가 일제 강점기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민족 간의 거주지를 구분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개항 이후 서울로 이주해 온 일본인들은 일본 공사관이 있던 남산 아래 진고개 일대에 정착했다. 이들은 현재의 예장동, 남산동, 필동, 명동, 충무로 일대로 몰려와 주거지를 형성했다. 일제 강점기 북촌과 남촌의 경계는 청계천이 되었다. 반면 조선인 거주 지역의 중심은 종로였다. 종로의 상인들은 서로 연합하여 자신들의 상권을 일본인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지역별 거주 형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의 정치⋅경제적 힘이 커지면서 두 지역 사이에 민족 차별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계천 이남인 남촌의 거리는 가로등과 도로 포장 등의 시설이 확충되었고, 은행과 백화점 등이 들어서며 번화가로 변모했다. 그러나 북촌의 거리는 그러한 시설이 갖춰지지 못했다. 이에 당시 한글 신문 및 잡지에서는 ‘시끌벅적하고 화려한 남촌 시가, 몰락한 북촌의 참상’과 같은 방식으로 남촌과 북촌을 대비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실제 조선인들은 조선인 거주지에 대해 남촌에 비해 뒤떨어진 도로와 위생 시설 등 근대 도시로서의 시설을 확충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일제에 의해 실현되지 못했다. 이처럼 조선 시대의 남촌과 북촌 용어는 일제 강점기 들어 조선인과 일본인의 민족에 따른 이원화된 공간 구조를 지칭하는 의미로 바뀐 것이다.

일제는 실제 행정 구역상으로도 일본인 집중 거주지와 조선인 집중 거주지를 각각 정(町, 일본식 발음으로는 ‘마치’)과 동(洞)으로 구분하여 정했다. 이와 같은 도시의 이중적인 모습은 경성 외에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도시들도 일본인이 득세하면서 식민 지배자들의 권력을 상징하는 경찰서 등 관공서, 일본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점가, 그들이 거주하는 일본인 거주지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남촌과 북촌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민족 차별성을 내포한 식민지 도시화는 경성만의 현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 관련자료

ㆍ남촌(南村)
ㆍ북촌(北村)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