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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양일체론

제목 왜양일체론
한자명 倭洋一體論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조선~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세력이 일본도 서양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조일 수호 조규 체결을 반대한 논리.

[내용]

1876년(고종 13) 1월에 일본 정부는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를 특명전권대신으로 하는 사절단 및 군함을 강화도로 파견했다. 전권 일행의 임무는 1875년에 발생한 운요호 사건의 처리 및 조선과 수교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도착하자, 조선 정부는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일본과 교섭을 결정하고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을 전권대신으로 하는 사절단을 강화도로 파견했다. 조선과 일본의 전권대신들은 2월 11일(음력 1월 17일)에 강화부 연무당에서 정식 회담을 시작했다.

조선과 일본의 회담 소식이 한양에 알려지자, 대원군 세력 및 재야 유림들은 일본과 교섭 및 화친 조약 체결을 반대했다. 특히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상소에서 “비록 왜인(倭人)이라고 핑계대지만 실제로는 서양 도적들”, “왜인들은 서양 옷을 입고 서양 총을 쏘며 서양배를 타고 다니니 이는 왜인이나 서양 사람이나 한 가지라는 것의 뚜렷한 증거”라고 언급하면서 왜양일체론에 입각하여 일본과 화친을 반대했다. 그러자 조선 정부는 최익현을 흑산도로 귀양 보내는 강경책을 취함으로써, 최익현을 비롯한 화친 반대론자들이 제기한 왜양일체론을 묵살하고 일본과 수호 조규를 체결했다.

성리학의 화이사상(華夷思想)은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거치면서 정학(正學)인 성리학을 지키고 이단, 곧 외세의 종교와 문물을 배격해야 한다는 위정척사론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입장은 이항로(李恒老), 기정진(奇正鎭)과 그 문인들이 주로 제기했다. 이항로의 문인인 최익현 역시 이러한 입장을 계승하였으며, 왜양일체론은 당시 집권층이 서양 열강뿐 아니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일본의 침략 의도를 특히 경계하도록 제시된 논리였다. 이러한 입장은 1880년대 개화 반대론과 1890년대 항일 의병 투쟁으로 이어졌다.

▶ 관련자료

ㆍ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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