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검색팝업 닫기
목록보기
시나리오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인의 화장법과 화장품!
독창적인 한국의 화장 문화!
그 뿌리가 된 우리 선조들의 화장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화장의 역사와 미의식

화장이란 흔히 화장품을 피부에 펴 발라 얼굴을 곱게 꾸미는 것을 말하는데요. 옛 선조들은 화장 대신 ‘단장’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역사 속 화장한 여인의 모습은 삼국시대 벽화를 통해 확인되는데요. 양 볼에 연지를 찍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벽화를 통해서도 화장한 여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자연스럽게 눈썹을 그리고 있으며, 수수한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자색(고운 얼굴)은 분칠로 바뀐 것이니, 어찌 분칠한 것을 참 자색이라 할 수 있으랴.

-『연산군일기』 연산군 11년(1505) 1월 11일

유교의 영향을 받은 조선시대 역시 화장이 아름다움을 가릴 수 있다 하여 과도한 치장을 경계했는데요. 풍속화 속 일반 여성은 물론 기생까지도 담백하고 옅은 화장을 하고 있으며 유난히 하얀 피부가 돋보입니다.

당시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하얀 얼굴을 선호했다고 하는데요. 하얀 얼굴은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의 상징이었고 여인들의 검은 머리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조선의 여인들은 머리 손질에 공을 들였는데요. 머리를 더 크게 만드는 가체는 많은 여성의 로망이었습니다. 때문에 풍성한 머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피부를 백옥 같이 가꾸고자 했는데요.

쌀뜨물이나 곡식을 갈아 만든 조두로 세수를 했으며 꿀을 펴 발라 팩을 하는 등 피부 청결과 영양에 신경을 썼습니다.

면연지 5백 개, 분궤 2개, 바늘 5백 개

-『세종실록』 세종 11년(1429) 1월 27일

분, 연지, 바늘 각각 1봉, 백령 1쌍을 주니

-『세조실록』 세조 14년(1468) 5월 15일

하얀 피부를 선호한 만큼 분 화장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당대 유행을 주도했던 왕실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효종의 딸인 숙신공주의 묘에서는 분가루가 남아있는 화장품 그릇이 출토 됐는데요. 분을 떠서 풀어 쓸 수 있도록 한 숟가락이 흥미롭습니다.

사도세자의 친누나였던 화협옹주 묘에서도 다양한 화장 도구가 출토됐는데요. 당시 사용했던 분가루와 연지 등이 일부 남아 있었습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 보다 자연스러움과 조화를 중시했던 선조들의 화장법!
이것이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미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희고 깨끗한, 그러면서 백옥 같은 피부를 추구했어요. 그러다보니까 피부에 집중하는 기초화장이 발달했습니다. 반면에 중국이나 일본은 색조 화장이 발달을 했죠. 저는 그 이유가 각 민족이 갖고 있는 미의식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요. 즉 피부를 희고 깨끗하고 촉촉하면서 광택이 나게 만드는 피부 화장에 치중하는 것이 우리나라 화장의 특징이고요. 그것이 한국인의 미의식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민주 선임연구원 /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 화장품의 재료와 종류

조선시대 왕실의 화장품은 보염서에서 공급했다고 하는데요. 일반 백성들은 화장품을 어디서 구했을까요?

“조선시대에는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가꾸는데 중점을 뒀기 때문에 그때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피부를 관리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혼례 같은 행사 때는 더 진한 화장을 합니다. 그때는 일반 가정에서는 쉽게 (화장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재료들은 매분구를 통해 구입하여 사용을 한 예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김민정 학예연구사 /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겨울에 얼굴이 거칠고 터지는데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봉하여 28일쯤 두었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을뿐더러 윤이 나고 옥 같아진다.

-『규합총서』 / 빙허각 이씨

조선시대 부녀자들을 위한 책, 『규합총서』를 보면 화장품의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소개돼 있는데요. 면지법이 대표적입니다. 면지는 얼굴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화장품인데요. 달걀을 술에 담가 두었다가 바르면 피부에 윤기가 났죠.

“계란은 노른자, 흰자 다 단백질로 우리가 섭취도 하는데 껍질에서도 아주 완벽한 미네랄이 나와요. 미네랄이 없으면 (피부가) 트거든요. 한 달 정도 계란을 술에 담가 놨다가 쓰라고 했어요. 몸소 경험한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해 주셨던 것 같아요.”

이지은 / 한국자연미용법연구회 회장

박, 수세미, 유자 등으로는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는 미안수를 만들었는데요. 오이 꼭지를 얼굴에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또 홍화 꽃으로는 연지를 만들어 사용했고요. 나무 숯과 달개비 꽃잎을 태운 재로는 미묵을 만들었습니다.

얼굴빛을 뽀얗게 만드는 분은 여인들이 가장 갖고 싶은 화장품이었는데요. 분꽃 열매와 쌀, 보리 등을 곱게 갈아 만든 백분은 부착력이 떨어졌습니다.

때문에 얼굴에 잘 부착되었던 연분이 인기를 끌었는데요. 연분은 납 성분으로 인한 부작용이 문제가 되었죠.

바르면 예 없던 교태 절로 나는 연지분이오. 진실로 그러할 양이면 헌 속옷을 팔망정 대여섯 말이나 사리라

- 김수장 / 『해동가요』

그럼에도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인들의 욕구는 막지 못했는데요. 헌 속옷을 팔아서라도 분을 사겠다는 노래가 그 마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구한 재료에 지혜를 더해 자신을 가꾸고자 했던 조선의 여인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미의식은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독창적인 화장법으로 자리 잡으며 세계를 매혹시키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화장이란 화장품을 바르거나 문질러 얼굴을 곱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2.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과도한 치장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3. 조선의 여인들은 화려한 색조 화장 보다는 피부를 희고 깨끗하게 가꾸는 데 더 치중했다.

해설

화장은 어느 특정 나라의 전유물이 아니라 장식설, 이성 유인설, 신체 보호설 등 보편적인 요인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각 민족의 미의식은 서로 다른 독창적인 화장 문화를 만들며, 꾸준히 변화 발전하고 있다. 한·중·일 삼국의 화장 문화를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의 독창적인 미의식을 찾아보자.

1. 한·중·일 화장의 시작 및 유래

우리나라의 화장은 피부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읍루인들은 돼지기름을 두텁게 발라 피부를 보호하였으며, 단군신화에서 볼 수 있는 백색 피부를 선호하는 것 역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후 백제, 신라에서 분을 발랐다는 기록은 없지만 고구려 고분벽화 등에는 연지 또는 나뭇가지를 그려 화장한 모습이 확인되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모든 면에서 당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당의 화려한 화장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본다. 고려에 이르면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않고 눈썹을 넓게 그리기도 했지만, 너울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풍속이 있었으므로 진한 화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조선에 이르면 화장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진다. 부덕이 강조되고 유학적 도덕관념이 팽배한 사회에서 진한 화장이나 과도한 치장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피부를 선호했던 조선 여인들이었기에 미용에 관심이 많았으며, 궁궐 여인이나 기생 등 특수한 여성들은 분을 발랐으며, 일반 부녀자들도 혼례와 같은 특별한 의례 때에는 분을 사용하였다. 이후 개항기를 거쳐 서양 문물이 도입되면서 러시아·중국·일본 등의 분이 유입되면서 1920년 우리나라에서도 분을 생산하였지만 여전히 엷은 분화장과 함께 피부에 중점을 두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추구했다.

반면에 중국에서의 화장은 오랑캐와의 구분을 위한 문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선진시대부터 눈썹과 얼굴 전체, 입술 등에서 화장의 흔적이 보인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특이한 화장을 했던 시대는 단연 수·당 시대이다. 꽃, 보조개 등의 장식은 물론 눈썹 색도 비취색과 검은색을 사용하고 눈썹의 굵기를 다양하게 그렸다. 심지어 당대 여인들은 화장하는 순서를 정해놓을 정도로 화장의 종류가 많았다. 이후 송과 명은 여성미를 강조하는 화장이 유행했으며, 청대가 되면 창백한 느낌을 주는 병폐적인 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중국은 눈썹과 입술에서 기본적인 변화를 주고 화전, 액황, 면엽, 사홍 등 색조화장을 발달시켰다.

그렇다면 일본의 화장을 어땠을까? 일본은 얼굴에 점토를 바르면서 화장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분화장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의 화장은 중국 수·당으로부터 불교문화와 함께 연지와 분, 머릿기름, 향 등의 제조법이 전래되었지만 헤이안시대 이후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백분(白粉)’을 사용하였다. 백분은 귀족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납을 원료로 한 ‘경백분(京白粉)’과 수은을 원료로 한 ‘이세백분(伊勢白粉)’, 그리고 쌀가루로 만든 분이 있었다. 이후 에도시대가 되면 얼굴뿐 아니라 목덜미까지 하얗게 백분을 발랐으며, 빨간색의 입술과 검은색의 눈썹, 흑치 등 세 가지 색상을 이용한 화장 문화가 발달하였다.

2. 한·중·일 화장의 종류 및 화장도구

조선을 중심으로 동시대에 있었던 중국의 명·청이나 일본의 에도시대 화장 종류를 비교해 보면, 각 민족마다 가장 집중했던 화장이 무엇이었는지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삼국의 공통된 화장법은 하얀 피부에 있지만 각 민족의 미의식에 따라 집중하는 화장의 종류가 달랐으며, 이때 사용하는 화장도구는 새로운 화장 문화를 이끌었다.

우리나라는 색조 화장보다는 백옥 같은 피부를 미인으로 인식했다. 백옥 같은 피부는 기미, 주근깨, 잡티가 없는 투명한 피부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청결이었으며, 그 위에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기초화장에 주안점을 두었다.

피부 세정제로는 녹두와 팥, 쌀겨, 밀기울을 비롯해 쌀뜨물 등이 사용되었다. 충분한 수분공급을 위해서는 박, 수세미, 오이, 유자 등이 이용되었으며,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계란을 활용한 면지법이 사용되었다. 피부에 광택을 주기 위한 식물성 기름도 활용하였다. 물론 하얀 얼굴을 만들기 위해 분을 발랐지만, 이는 왕실의 여성이나 기생 등 특수계층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물론 일반인들도 결혼 등의 특별한 의례에서는 분과 함께 연지를 발랐지만, 이는 혼례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색조 화장으로 일상적인 화장은 아니었으며, 눈썹도 자연스럽게 그렸다.

한편 왕실에서 사용한 화장도구로는 분을 담는 합(盒), 기름을 담는 호(壺), 분을 바를 때 사용하는 첩 등이 있다. 효종의 딸인 숙신공주, 사도세자의 누이인 화협옹주, 영친왕비 등이 사용한 화장도구가 남아있으며, 화장 용기에는 화려한 장식과 무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숙신공주 묘에서 출토된 화장용기에는 뚜껑 안쪽에 작은 숟가락이 붙어 있어 화장품을 뜨는 데 사용하였을 것이다. 화장품은 물론 화장 용기에도 관심이 쏠린다.

반면에 중국은 색조 화장에 치중했다. 심지어 명이 망한 원인 중 하나가 사치였으며, 그 중심에 화장이 있었다. 하얀 얼굴을 만들기 위해 중국 여인들은 쌀가루로 만든 미분보다는 납 성분이 들어간 백분을 선호하였으며, 인공 안료까지 사용하였다. 송대에는 익모초, 석고분으로 만든 옥녀도화분이 인기가 있었으며, 명대에는 진주분의 인기가 높았다. 또 청대에는 활석 및 광석으로 만든 석분이 유행함으로써 시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분을 통해 밝고 환한 얼굴을 만들기도 하고 창백하고 퇴폐적인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

중국 여인들의 색조 화장은 볼과 입술을 붉게 칠하는 연지는 물론 이마에 화전이나 화황을 붙이기도 하고 뺨에는 사홍이라고 하는 면엽이 발달하였으며, 뺨과 보조개 쪽에 점을 찍기도 했다. 눈썹화장도 길이와 넓이에 따라 버들잎 모양의 유미, 유엽미, 월미, 활미, 계엽미 등이 발달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색조 화장이 존재했던 만큼 분, 연지, 눈썹 등을 그릴 수 있는 도구가 선진시대부터 발달하였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 역시 청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민족이지만 흰색 분을 얼굴 및 목덜미까지 하얗게 바름으로써 피부를 은폐하고 얼굴의 이목구비를 소거하고자 했다. 입술에는 붉은색을 바르기도 하고 먹을 발라 검붉은 색을 만드는 등 왜곡된 화장을 하는가 하며 눈썹을 밀거나 새로운 위치에 눈썹을 그림으로써 감정까지 소거하는 화장이 발달했다.

일본의 화장도구는 흰색, 빨간색, 검은색의 3색 화장을 기본으로 농도에 따라 변화를 주었으며, 이를 위해 여러 개의 분합을 겹겹이 쌓아 사용하였다. 눈썹을 밀기 위해서는 체도를 사용하였으며, 분첩이나 솔도 크기와 굵기를 달리하면서 여러 개의 화장도구가 사용되었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포장 문화로까지 발달하였다.

3. 한국인의 미의식

화장은 궁극적으로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공통된 미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삼국 모두 흰 얼굴을 선호하는 공통된 미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공통 미의식 위에 각 민족마다 추구하는 미의식이 추가되면서 각기 다른 독창적인 화장 문화를 탄생시켰다.

삼국 중 한국의 화장이 가장 소박하다. 그러나 화장이 소박했다고 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나 미의식이 약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선의 여인들이 추구한 미의식이 화려한 화장이 아니라 기미, 잡티, 주근깨가 없는 맑고 깨끗한 백옥 같은 피부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분이나 색조 화장보다는 깨끗한 피부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으며, 오히려 현대에서 추구하는 자연스럽고 친환경적인 화장 문화의 선두주자로서 K-beauty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깨끗한 피부를 강조하며 기초화장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인의 미의식에 자리 잡은 ‘미인의 기준’이 얼굴이 아닌 머리카락에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이 얼마나 검고 길며 풍성한가가 미인의 기준이었기에 머리를 돋보이기 위해 얼굴은 깨끗한 백옥 같은 피부면 충분했던 것이다.

다행히 현대 여성들은 색조 화장보다는 깨끗한 피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백옥 같은 피부를 만들고자 피부에 집중했던 한국의 화장이 전 세계 여성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앞으로도 화장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 바뀌든지 근본적으로 피부에 대한 관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피부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다양한 화장법을 찾아내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 독창적인 화장 문화를 만들었던 작업들이 궁극적으로 K-beauty를 선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도 화장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도록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12,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가의 유물』
  • 서문당, 1996,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 속-생활과 풍속
  • 서문당, 1996,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생활과 풍속

단행본

  • 국사편찬위원회, 2006,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두산동아
  • 김명길, 1977,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
  • 大坊郁夫·神山進, 조기여·유태순 역, 2005, 『의복과 화장의 사회심리학』, 동서교류
  • 빙허각이씨, 정양완 역, 1975, 『규합총서』, 보진재
  • 이민주, 2019, 『조선왕실의 미용과 치장』, 세창출판사
  • 이사베라 버드 비숍, 이인화 역, 1994,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살림
  • 전완길, 1980, 『한국인·여속 멋 5000년』, 교문사
  • 전완길, 1987, 『한국화장문화사』, 열화당

논문

  • 김서주·박옥련, 1999, 「당대화장문화에 관한 고찰」, 『경성대학교 논문집』 제 20집 2권, 자연편
  • 박보영, 2005, 「일본 여성의 색조화장에 반영된 미의식 연구」, 『한국인체예술학회지』 6(3)
  • 안현순·고정민, 2012, 「중국 청 왕조시대와 일본 강호시대의 미의식에 따른 화장문화 비교연구」, 『비교문화연구』 27
  • 이경자·송민종, 1991, 「우리나라 전통 화장문화에 관한 연구」, 『복식』 17
  • 이은혜, 1997, 「한국여성의 전통 미인상과 그 복식에 관한 연구」, 세종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정용희·이현옥, 1998, 「전통화잔문화에 나타난 연지의 변천에 관한 고찰」, 『복식문화연구』 6(1)
  • 최정숙, 라현숙, 2001, 「한국전통분(power) 화장문화사 연구」, 『한국미용학회지』 17(3)
  • 황성순, 2008, 「중국화장문화를 통해 본 현대 중국여성의 색조화장 행동」, 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화장
자료정보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