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제목 | 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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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留記 |
유형 | |
시대 | 삼국 시대 |
관련국가 | 고구려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고구려의 역사서.
[내용]
『유기(留記)』는 고구려의 또 다른 역사서인 『신집(新集)』을 편찬하는 과정을 서술할 때 언급되는 역사서로, 이 책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 기록은 없다. 원래 고구려에는 『유기』 100권이 있었는데, 600년(고구려 영양왕 11년)에 이를 고쳐 『신집』 5권을 새로이 편찬했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가 10권인 점과 비교하면 『유기』 100권은 상당히 많은 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유기』가 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내용과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의 고구려 초기 기사에 신화나 설화적인 내용이 많고, 역대 왕의 계보와 왕위 계승 과정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음을 볼 때,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신라나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구려도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국왕의 혈통을 신성화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서를 편찬했을 것이다.
『유기』의 편찬 시기에 대해서는 제3대 대무신왕(大武神王, 재위 18~44) 대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신라나 백제의 역사서가 대체로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성립되는 시기에 편찬된 점을 고려할 때, 율령이 반포되고 불교가 공인된 소수림왕(小獸林王, 재위 371~384) 대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 관련자료
- ㆍ유기(留記)
- 주제로 보는 한국사: 5) 사상의 지형이 다른 두 역사책; 『삼국사기』와 『편년통록』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역사 편찬과 유학의 보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