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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제목 설총
한자명 薛聰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신라, 통일 신라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통일 신라 시대의 학자이자 문장가.

[내용]

설총(薛聰)의 아버지는 원효 대사(元曉大師)이며, 어머니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의 딸인 요석 공주(瑤石公主)이다. 정확한 생몰 연도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태종 무열왕 대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6두품의 신분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지며,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대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 대에 활동했던 기록이 전한다. 경주 설씨의 시조로, 아들로는 설중업(薛仲業)이 있다고 한다.

설총은 매우 총명하여 문장을 잘 지었는데, 왕에게 지어 바친 「화왕계(花王戒)」가 유명하다. 그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제6에 강수(强首), 최치원(崔致遠)과 함께 들어 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문장을 잘 짓기로 소문나 신라의 3대 문장가라 일컬어졌다. 설총은 많은 글을 지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전하지 않는다. 「화왕계」 이외에 설총의 저술로 확인된 것은 719년(신라 성덕왕 18년)의 「감산사아미타여래조상기(甘山寺阿彌陀如來造像記)」가 있다.

설총의 가장 큰 업적은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법인 향찰(鄕札) 혹은 이두(吏讀)를 집대성⋅정리한 것이다. 그는 우리말로 유교 경전인 9경(九經)을 읽어 후학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총은 우리나라에 유학(儒學)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후대에까지 존경을 받았다. 이에 1022년(고려 현종 13년) 고려에서 홍유후(弘儒侯)로 추증하여 문묘(文廟)에 배향하였다. 설총의 문묘 배향은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경주 서악 서원(西嶽書院)에도 위패가 모셔졌다.

▶ 관련자료

ㆍ설총(薛聰)
ㆍ홍유후(弘儒侯)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