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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상지

제목 흑치상지
한자명 黑齒常之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백제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백제의 장군으로 백제 부흥 운동을 이끌었으며, 후에 당(唐)에 투항하여 활약을 펼친 인물.

[내용]

흑치상지(黑齒常之)는 630년(백제 무왕 31년)에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원래 부여(扶餘)씨, 곧 백제 왕성이었는데 흑치(黑齒) 지역에 봉해졌기 때문에 흑치를 성으로 삼았다. 따라서 백제 왕족의 방계 집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백제 16관등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달솔(達率)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며, 풍달군장(風達郡將)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660년(백제 의자왕 20년) 나당(羅唐)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패망하자 백제 부흥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663년 항복하고 당으로 건너가 당에서 관직 생활을 하였다.

664년에는 백제 땅으로 돌아와 당이 백제 지역을 통치하는 일을 도왔다. 신라가 백제 지역을 완전히 차지하자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의 서쪽 지역에서 토번(吐蕃)과 돌궐(突厥)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서경업(徐敬業)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이에 그의 직위는 좌무위위대장군 검교좌우림군(左武威衛大將軍檢校左羽林軍)에 이르렀고, 연국공(燕國公)의 작호(爵號)와 식읍(食邑) 3000호(戶)를 하사받았다.

하지만 주흥(周興) 등에 의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옥에 갇혔다가 689년 10월 처형되었다. 698년 그의 장남 흑치준(黑齒俊)의 노력으로 복권되어 좌옥검위대장군(左玉鈐衛大將軍)으로 추증(追贈)되었다.

▶ 관련자료

ㆍ흑치상지(黑齒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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