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재 학당
제목 | 9재 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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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九齋學堂 |
유형 | |
시대 | 고려 시대 |
관련국가 | 고려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최충(崔沖, 948~1068)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집에 세운 사립 교육 기관.
[내용]
최충은 학생들이 많이 몰리자 악성(樂聖)⋅대중(大中)⋅성명(誠明)⋅경업(敬業)⋅조도(造道)⋅솔성(率性)⋅진덕(進德)⋅대화(大和)⋅대빙(待聘)의 9재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였으므로 9재 학당이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유가의 경전과 주요 역사서를 학습하고 글짓기에 해당하는 제술(製述)을 주로 하였으며, 매년 여름에는 사찰에서 하과(夏課)를 열기도 하였다. 하과는 여름 50일 동안 절에서 시와 문장을 지으며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9재 학당은 최충이 죽은 후 그의 시호를 따라 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도 칭하였으며, 중앙의 문벌 자제들이 이곳에서 많이 공부하였다. 이후 여러 고관들이 9재 학당과 유사한 11개의 사학을 개설하자 이를 모두 합쳐 사학 12도(私學十二徒)라 불렀다. 1391년(공양왕 3)에 폐지되었다.
[의의]
11세기 문종(文宗, 재위 1046∼1083) 대부터 고려 말까지 고등 교육을 담당한 9재 학당은 다수의 과거 합격자를 배출함으로써 고려의 문인 관료를 양성하였고, 이들이 정치 세력화하고 인맥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