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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경과

제목 명경과
한자명 明經科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명경업(明經業)
별칭•이칭

[정의]

고려 시기에 유교 경전의 해석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과거 시험의 한 분과.

[내용]

고려의 과거 제도(科擧制度)는 제술과(製述科), 명경과(明經科), 잡과(雜科), 승과(僧科)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명경과는 『상서(尙書)』⋅『주역(周易)』⋅『모시(毛詩)』⋅『춘추(春秋)』⋅『예기(禮記)』 등 유학 경전의 해석 능력을 측정하던 시험 분과였다. 대체로 경전의 해당 내용을 읽고 그에 대한 해석 능력을 시험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경전의 의미를 파악하고 주석하는 훈고학적인 학문 경향이 주류를 이루었으므로, 그에 기초하여 응시자의 성적을 매겼을 것이다. 하지만 고려 시기에는 경학보다 문장 짓는 것을 더 중시하였기 때문에 전 시기 동안 명경과 급제자의 총 인원은 제술과 급제자의 1/10도 안 되었고, 때로는 장기간 급제자를 선발하지 않기도 하였다. 고려 전 시기를 거치며 제술과 급제자는 6700명이나 되었으나 명경과는 449명에 불과하였다.

고려 말 성리학 도입 이후에는 경전의 자구 해석이나 문장 짓기에만 매달리지 않고, 경전의 원래 뜻을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정치에 반영해야 한다는 경향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단순히 경전의 의미만 파악하고 주석하는 시험보다는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 능력을 알아보는 시험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과거를 주관하는 좌주(座主)와 합격한 문생(門生)이 결탁하여 문벌을 이루는 것에 대한 비판 역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 대에는 경학의 철학적 해석 능력을 묻고 왕이 직접 주관하는 전시(殿試)를 실시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유지되지는 못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과거제 개혁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문과에서 명경과와 제술과가 통합되었고, 문과 초장의 강경(講經), 중장의 표문(表文) 등의 제술, 종장의 책문(策問)으로 정비되었다.

▶ 관련자료

ㆍ명경과(明經科)
ㆍ명경업(明經業)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