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신문
제목 | 제국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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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帝國新聞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대한제국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898년(고종 35) 창간된 순한글 일간 신문.
[내용]
1898년 8월 10일 이종일(李鍾一)이 창간한 신문으로, 유영석(柳永錫), 이종면(李鍾冕), 장효근(張孝根) 등이 편집을 맡았다. 창간 초기에는 이승만(李承晩)이 주필로 활약하였다. 이후 이해조(李海朝), 이인직(李人稙) 등이 신문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창간 초기에는 제호를 〈뎨국신문〉으로 표기했으나 1903년 7월 7일 〈帝國新聞〉으로 변경했다.
〈제국신문〉은 순 한글로 매일 4면을 발행했다. 주로 1면에 논설, 2면에 관보대게(官報代揭)와 잡보, 3면에 해외 통신, 4면에 광고가 실렸다. 또 1면과 3면에 독자 투고라고 할 수 있는 기서(奇書)가 자주 게재되었다. 발행 부수는 2,000부 내외였다. 이 신문은 순 한글로 기사를 작성하여 한문을 익히지 못한 부녀자, 하층민을 독자층으로 삼았다.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와 마찬가지로 기사의 주요 내용은 한국의 문명개화 및 국권 수호와 관련된 계몽주의적, 민족주의적 성격의 것이었다. 러일 전쟁 중인 1904년 10월 7일자 논설이 친일 단체인 일진회를 비판하자 일본의 군사상 및 치안상 방해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3주간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속국화시키자, 〈제국신문〉은 친일 내각과 친일파, 일본의 대한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자주 보도하였다. 때문에 사전 검열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신문이 정간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또 신문사 운영진에 대한 탄압도 계속되었다. 1903년 6월에는 잠시 사장직을 맡았던 최강(崔岡)이 구속되었고, 1908년 8월에는 사장 이종일이 구속되었다.
일제의 언론 탄압 외에 〈제국신문〉은 창간 초기부터 계속되는 재정난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의 자금 지원과 독자들의 성금으로 신문 발행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 8월 2일 폐간되었으며, 창간부터 이때까지 12년간 약 3,240호가 발행되었다.
▶ 관련자료
- ㆍ제국신문(帝國新聞)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을사조약 반대 투쟁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언론 기관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