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회
제목 | 찬양회 |
---|---|
한자명 | 贊襄會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대한제국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898년(고종 35) 9월 서울에서 설립된 최초의 여성 단체.
[내용]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양반 여성이었던 이소사(李召史), 김소사(金召史)의 명의로 「여학교 설시통문(女學校設施通文)」, 즉 「여권통문(女權通文)」이 발표되었다. 「여권통문」의 내용은 문명개화를 이루는 데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참여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으며,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게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통문은 특히 여성이 교육받아야 할 당위성과 권리를 강조하였다. 문명개화한 국가의 여성은 어려서부터 남성과 마찬가지로 학교 교육을 받아 남성과 같은 재주와 권리와 신의를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게 구속받지 않으며 동등하다는 것이다. 즉 남녀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 교육이 급선무라고 인식했다.
「여권통문」이 발표되자 양반 부인들을 비롯하여 일반 서민층 부인들과 기생들도 그 주장을 지지했다. 「여권통문」을 발표했던 여성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찬양회라는 최초의 근대적 여성 단체를 조직하였다. 회장에는 양성당 이씨, 부회장에는 양현당(養賢堂) 김씨, 총무에는 창길당 이씨와 양진당 태씨, 사무원에는 정길당 고씨가 선출되었고, 창설 당시에는 약 400명의 회원이 있었다.
찬양회는 정기 집회, 연설회, 토론회 등을 통해 여성 교육 실시와 여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이들의 여학교 설립 운동은 관립 여학교 설립 운동으로 전개되어 정부에 상소를 올려 관립 여학교 설립을 청원하였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여학교 설립을 위한 예산을 책정하고 「여학교 규칙」을 마련하였다.
찬양회는 정부에 관립 여학교 설립을 청원하는 한편 1899년 2월 26일 서울에 30명 정원의 순성 여학교(順成女學校)를 개교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한국 여성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여학교로 7, 8세에서 12, 13세 연령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소학교 과정을 교육하였다. 찬양회는 순성 여학교를 관립 여학교로 만들고자 했으나 재정 부족 및 여성 교육을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 실현되지는 못했다.
▶ 관련자료
- ㆍ찬양회(讚揚會)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여학교 설치 통문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사회 제도와 의식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