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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동맹

제목 건국 동맹
한자명 建國同盟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44년 8월 여운형(呂運亨, 1886~1947)을 중심으로 조직된 항일 비밀 결사.

[내용]

건국 동맹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을 예견하고 여운형, 조동호(趙東祜), 현우현(玄又玄) 등이 현우현의 집인 서울 경운동 삼광의원에 모여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였다. 건국 동맹은 일제가 패망한 후 도래할 해방 정국을 주체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그 주된 목적으로 하였다. 건국 동맹은 강령으로 첫째, 각인각파(各人各派)를 대동단결하여 거국일치(擧國一致)로 일본 제국주의 제세력을 구축(驅逐)하고 한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것, 둘째, 대일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한국의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반동 세력을 박멸할 것, 셋째, 건국 부문에 있어서 일체의 행위를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거하고 특히 노농 대중의 해방에 치중할 것을 천명했다.

결성 후 조직원을 확대하면서 1944년 10월에는 여운형을 위원장으로, 내무부에 조동호와 현운호, 외무부에 이걸소(李傑笑⋅李基錫), 이석구, 황운, 재무부에 김진우(金振宇), 이수목(李秀穆) 등 중앙 부서를 선임했다. 당시 중앙 조직은 직업별로는 화가 김진우, 군인 박승환(朴承煥), 한의사 현우현, 문필가 김세용(金世鎔)⋅이여성(李如星), 체육인 이상백(李相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다. 건국 동맹은 각 지방에도 조직을 결성하였는데, 충청도에 신표성(愼杓成), 장준(張浚) 등을 비롯해서 경상도, 전라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에 지역 책임자를 선임하였다. 이 중에는 이유필(李裕弼)과 같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장관을 역임한 서북 지방 기독교 계열의 민족주의자도 포함되어 있었고, 황태성(黃泰成), 정운해(鄭雲海), 이증림(李增林) 같은 공산주의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10월에는 경기도 용문산에서 여운형⋅김용기⋅이장호 등 13명이 모여 농민동맹을 결성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청년 학생 그룹들이 가담했으며, 노동자들과 부녀들의 조직과 교원에 대한 조직도 준비하였다. 건국 동맹은 점조직과 이명동체(異名同體)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조직을 유지했다. 그러나 일제의 철저한 감시 때문에 조직을 확대하지는 못했다.

한편 전세가 연합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던 1945년 3월경 건국 동맹의 조동호, 이석구, 이걸소 3인은 공산주의 그룹의 최원택, 정재달, 이승엽 등과 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일제의 통신 시설 및 철도 선로 파괴 등 후방 교란을 위한 무장 활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는 들어가지는 못했다. 건국 동맹은 해외 독립운동 단체와의 연계에도 노력하였다. 그 주된 대상은 화북 조선 독립 동맹이었다. 건국 동맹은 이영선⋅이상백 등을 파견하여 베이징 등지에서 화북 조선 독립 동맹의 연락원들과 접촉하였고, 항일 투쟁 방침과 국가 건설 노선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 외에도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연락을 추진했지만 접촉에 실패하여 성사되지 못하였다. 1945년 7월 대한애국청년당의 부민관 폭파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 여파로 8월 4일 건국 동맹의 이걸소⋅황운⋅이석구⋅조동호 등 1차 중앙 간부 다수가 검거되었다. 이에 따라 여운형은 2차 중앙 간부로 최근우⋅김세용⋅이여성⋅이상백⋅김기용⋅이만규를 새로 선출했다.

8⋅15 해방이 되면서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朝鮮建國準備委員會)가 결성되어 혼란기의 치안 유지 및 신국가 건설을 준비하였다. 8월 17일 결성된 건국준비위원회 1차 중앙 간부에는 건국 동맹의 조동호, 최근우 등이 참여하였다. 이후 건국 동맹의 이여성⋅이상도 등은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였고, 이만규, 이걸소(이기석), 이상백, 현우현, 이석구 등은 건국 동맹에 남아 건국 동맹의 조직 확대에 주력하였다. 해방 후 건국 동맹은 전국적 지도자로 급부상한 여운형의 위상과 건국준비위원회에서의 활동 때문에 급속히 조직을 확대하였다. 그렇지만 건국준비위원회를 통한 신정부 수립이 좌절되고, 9월 재건파공산당 주도의 조선인민공화국 결성을 둘러싸고 좌우가 심각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건국 동맹은 정당으로서 변신을 모색하게 된다. 그리고 11월 조선인민당이 결성되면서 해소되었다.

▶ 관련자료

ㆍ조선 건국 동맹(朝鮮建國同盟)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