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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척식 주식회사

제목 동양 척식 주식회사
한자명 東洋拓殖株式會社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일본
유의어 동척(東拓)
별칭•이칭

[정의]

일제가 일본인의 조선 이민 및 척식 사업 수행, 식민지 수탈을 위해 세운 국책 회사.

[내용]

1908년 8월 26일 「동양 척식 주식회사법」(대한제국 법률 제22호, 일본 법률 제63호)이 제정되어 같은 해 12월 28일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동양 척식 주식회사(이하 ‘동척’)의 업무는 농업 경영, 토지의 매매⋅임차와 관리⋅경영, 건축물의 매매 및 임차, 한일 이주민의 모집⋅분배, 이주민에 대한 물품 공급과 생산 및 분배, 척식(拓殖)에 필요한 자금 공급 등이었다. 이 가운데 중점은 토지 매수를 통한 일본 농민의 조선 이민에 있었다. 일제는 일본의 소농민을 대량으로 이주시켜 자작농으로 육성함으로써 한국의 ‘일본화’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고, 향후 10년간 24만 명의 일본인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동척은 대한제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주에 필요한 토지를 매수해 갔으며, 강제 병합 이후에는 각종 특혜 속에 토지 확대를 계속해 갔다. 그 결과 1914년 현재 논, 밭, 산림 등 전국 각지에 총 70,143정보를 보유함으로써 동척은 조선 최대의 지주로 부상했다.

토지 매수는 활발했지만 일본인 이민 사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동척이 1911년부터 1927년까지 17회에 걸쳐 이주시킨 일본인 이민 수는 당초 계획에 턱없이 모자라는 5,908호에 불과했다. 결국 1927년 이민 사업을 중단했다. 동척이 이민 사업을 축소⋅폐지하게 된 기본적인 이유는 조선 농민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우선 초기 자작농 이민자들에게 배당된 토지는 대한제국이 출자한 황실 소유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 많았다. 황실 소유지의 경작권은 예로부터 이곳을 경작하던 한국인에게는 일종의 재산으로 인정되어 공공연히 매매되기도 했는데, 동척이 이를 무시하고 일본인 농민에게 배당하자 한국인 농민들은 자신들의 경작권 박탈에 격렬히 반발했다. 반발에 직면하자 동척은 소유지 일부를 자작하고 나머지는 소작시키는 ‘지주형 이민’을 추진했는데, 이 경우에도 고율 소작료 부과 등으로 인해 한국인 소작농들의 저항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1920년대 전반 황해도 재령군 남률면(南栗面)과 북률면(北栗面)에서 줄곧 일어난 소작 쟁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선인들은 동척 이민 폐지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했고, 1926년에는 의열단원 나석주(羅錫疇)가 동척 경성 지점에 폭탄을 투하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일본인 이주민들 가운데서도 토지 매수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았고, 자작농보다 소작 농민에 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지주의 길을 택하면서 지주가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떠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민 사업은 1927년 중단되었다.

토지 매수와 이민 사업 등 농사 경영에 주력하던 동척은 1917년 7월 「동척 회사법」을 개정해 척식 금융 기관으로 변모해 갔다. 법 개정은 강점 이후 한국인 농민의 저항과 지가 상승으로 토지 매입에 차질을 빚기 시작하고, 순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등의 경영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그 해 10월 동척은 본점을 경성에서 도쿄로 옮기고 영업 지역을 점차 관동주와 만주, 러시아와 중국, 필리핀, 말레이 반도 등 조선 바깥으로 확장했다. 영업 목적도 척식 자금의 공급, 기타 척식 사업의 경영으로 변경했다. 1926년 제2차 산미 증식 계획 당시 동척은 조선 식산 은행과 함께 토지 개량을 위한 저리 자금을 공급했다. 1926년 7월에는 경성에 토지개량부를 신설하여 동척 사업 외에 기업자의 위탁을 받아 수리 조합 설치 등 사업에 필요한 사무와 설계, 또는 공사 감독을 대행했다. 1936년에는 선만 척식 주식회사를 세워 한국인의 만주 이주를 추진하기도 했다.

1930년대 동척은 조선의 공업화와 만주국 성립 이후 만주 개발에 편승하여 농산 가공, 방적업, 광업, 전력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이 시기 동척은 농업보다 전력업과 광업이라는 국책 사업으로 투자의 중심을 이동하여 이들 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40년대에는 비행기, 선박, 금속 기계 등 무기 생산에 직결되는 군수 제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대체로 조선에서는 중공업, 만주에서는 경공업, 동남아 지역에서는 원료 생산 기업에 투자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시 체제기에 급격히 팽창한 동척은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해체되어 북한 지역의 자산은 인민위원회로, 남한 지역의 자산은 신한공사로 이관되었다. 패전 당시 동척이 투자하고 있던 85개사 중 약 절반인 41개사가 조선에 본점을 두고 있었다. 국책 회사인 동척은 패망까지 지주 회사, 금융 기관, 산업 지배 기관의 성격을 겸비하며 일제의 식민지 확장 욕구를 충실히 수행해 갔던 것이다.

▶ 관련자료

ㆍ동양 척식 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ㆍ동양 척식 회사(東洋拓殖會社)
ㆍ동척(東拓)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