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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

제목 국내성
한자명 國內城
유형
시대 삼국 시대
관련국가 고구려
유의어 퉁구 성[通溝城], 환도성(丸都城), 위나암성(尉那巖城),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
별칭•이칭

[정의]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의 고구려 왕성(王城) 혹은 수도.

[내용]

고구려는 서기전 37년에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환런현[桓仁縣] 소재 오녀산성(五女山城) 지역을 도읍으로 삼아 건국하였다. 그리고 서기 3년(고구려 유리왕 22년)에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하였다. 그러므로 국내성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데, 민간인 거주 지역을 포함한 수도 전체를 둘러싼 성곽은 없었고 왕궁과 주변 지역을 둘러싼 성곽만 축조되었다. 따라서 국내성은 고구려의 수도에 세워진 왕성 내지는 궁성(宮城)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도로서의 국내성 지역은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 일대이며, 왕성으로서의 국내성은 지안시에 소재한 퉁구성[通溝城]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퉁구성은 잘 다듬은 돌로 쌓은 직사각형 평면의 석성(石城)으로, 성곽의 전체 길이가 2686m에 달한다.

국내성 지역에는 평상시 왕과 주요 지배층이 거주하는 평지성인 퉁구성 외에 고구려 성곽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머무르는 수비용 산성(山城)으로, 퉁구성으로부터 서북쪽으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이다.

[의의]

국내성은 427년(고구려 장수왕 15년) 평양(平壤)으로 천도할 때까지 고구려의 수도로서 기능하였다. 따라서 국내성 지역에서 돌무지무덤이나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등 수많은 고구려 유물⋅유적이 발견되어, 고구려 문화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성곽 자체가 고구려의 축성 기술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 관련자료

ㆍ국내성(國內城)
ㆍ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
ㆍ위나암성(尉那巖城)
ㆍ위나야성(尉那也城)
ㆍ통구성(通溝城)
ㆍ환도(丸都)
ㆍ환도산성(丸都山城)
ㆍ환도성(丸都城)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