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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지국

제목 목지국
한자명 目支國
유형
시대 삼국 이전
관련국가 마한
유의어 월지국(月支國)
별칭•이칭

[정의]

마한(馬韓) 54개 소국의 맹주국(盟主國).

[내용]

삼한(三韓)은 여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한에는 50여 개의 소국이 있었고,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에는 각각 12개국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크고 대표적인 소국들만 가리키는 것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많은 소국들이 존재했다고 여겨진다. 삼한의 소국들은 자치적인 정치 집단이었지만, 각각 마한⋅진한⋅변한 중 한 곳에 소속되어 느슨한 연맹을 구성하고 있었다. 목지국(目支國)은 마한 50여 소국 중 맹주국의 위치에 있었던 나라이다.

목지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서울, 인천(仁川)을 비롯하여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예산군(禮山郡), 아산만(牙山灣) 일대, 전라북도 익산시(益山市), 금강(錦江) 유역, 영산강(榮山江) 유역 등 여러 설이 제기되어 왔다. 이 가운데 천안 일대에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3세기 중반 이후 백제가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고 고대 국가로 성장하면서 목지국은 마한 맹주국의 지위를 상실해 갔다. 이후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 대에 이르면 백제가 마한 지역 대부분을 통합하는데, 이 사이 어느 시점에 목지국도 백제에 병합되었다.

목지국이 마한뿐만 아니라 진한과 변한을 포함한 삼한 전체의 맹주국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는 삼한 중 마한이 진한과 변한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삼한 소국들이 하나의 정치체로 통합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자치적인 정치체였기 때문에, 목지국이 마한이나 삼한 전체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마도 목지국은 삼한의 여러 소국들을 대표하여 낙랑군(樂浪郡)⋅대방군(帶方郡) 같은 중국 군현과의 교섭을 주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여러 소국들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 같다.

▶ 관련자료

ㆍ목지국(目支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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