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석탑

왕과 귀족, 일반 백성들의 신앙의 대상

부처님의 몸인 진신사리를 모신 무덤

탑!

고대인들은 탑에 예배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했다.

화강암으로 빚어진 부처님의 화신, 석탑?

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무덤으로, 살아 생전의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과 함께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러한 탑은 인도에서 시작,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목탑

불교전래 서기 372년

불교와 함께 목탑 문화가 들어오다.

하지만

화재와 전쟁으로 인해

현재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목탑은 1기도 없다.

화재에 취약했던 목탑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7세기 초!! 새로운 탑이 등장합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전환되는 데

그리 많은 시간과 고민은 없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청동기시대부터 조성된 지석묘

삼국시대에 많은 양의 석재를 채취

흔적과 수많은 산성이 석성인 이유

7세기엔 이미 석재에 대한 자신감과 기술력이 확보됐다.

우리나라엔 200여종의 화강암이 분포, 재료 구하기에도 용이했다.

신앙의 대상이었던 탑!

무엇보다 신성성과 영속성이 중요했다.

석탑은 인위적인 파괴가 없는 한 영원한 보존이 가능했다.  

순백의 색감이 뛰어난 화강암은 청정한 예배의 대상으로 잘 어울렸다.

또한 화강암은 전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였다

재료가 나무에서 돌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탑의 원형에도 변화가 왔을까요?

어떠한 형태로 석탑을 조성할 것인가?

결론은 목탑의 양식을 그대로 가져가자!

석탑의 구성

기단부 :단층기단

2층기단

탑신부 : 일석으로 조성

사리가 있었음을 암시

목조건축 양식과 동일

상륜부 : 옥개석(지붕에 해당함)

옥개석의 하면에는 각형의 받침이 조출(중국의 전탑과 목조건축의 포를 직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함)

목탑의 틀을 그대로 석탑에 재현했던 7세기!

백제시대에 건립된 미륵사지와 정림사지,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백제계석탑에 이 같은 목탑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7세기부터 시작된 석탑~~

이후 시대별로, 석탑은 어떤 변화를 가졌을까요?

시대 특징 대표적인 석탑과 석탑의 의미
백제시대 - 목탑의 형식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
- 석탑의 나라라는 별칭이 생긴 시대
- 최초 석탑인 미륵사지석탑이 건립
미륵사지석탑의 특징
- 낮은 기단위에 건립
- 초층탑신의 4면 방형의 초석 상면에 엔타시스가 뚜렷한 4개의 기둥
- 2층이상의 탑신은 2간으로 규모가 축소
- 추녀 끝은 반전을 이루는 모양  
신라시대 목탑과 미륵사지에서 확립된 양식
- 독자적인 석탑문화 구축
- 감은사진 삼층석탁, 대왕암
  (동해 자료)
감은사지삼층석탑
- 정형기의 석탑
- 상. 하 2층기단
- 양 우주가 별석이며 1매 판석으로 네 벽을 이룸
통일신라시대 - 본격적인 신라석탑의 건립
- 8세기, 9세기로 나뉨
- 9세기는 새로운 양식의 창출기
8세기 석탑
- 불국사삼층석탑이 대표적인 석탑
- 정형기 석탑의 양식적 공통점을 가짐
9세기 석탑
- 전국에 115기의 석탑이 건립
- 단층기단이 출현
- 옥개석의 받침이 4~5단으로 변화
- 불교적인 신앙에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번영 등을 기원하는 원탑의 건립
고려시대 - 태조 왕건 이래 숭불정책
- 현존하는 석탑의 절대다수가 건립 됨
- 신라석탑 + 지방적인(고구려, 신라,  백제) 특징
고려의 석탑
- 고구려계 석탑 → 평양을 중심으로 건립된 팔각형석탑 계열
- 백제계 석탑 →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
- 신라계 석탑 → 경상북도, 경기도 일원
- 고려식 석탑 → 고려의 특성을 지닌 석탑
- 특수형 석탑
조선시대 - 조선시대 건립된 탑은 몇기에 불과
- 통일신라에 확립된 일반형과 특수형 2가지 형식
일반형 석탑
- 불국사삼층석탑에서 확립된 기존의 형식을 유지한 건립
특수한 석탑
-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을 계승

불교의 정신이 반영

중요한 신앙의 대상

조상들의 지혜와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조형물

탑!

 

-------------------------------------

원고 자문 : 박경식

시나리오 구성 : 안현진, 김민상

성우 : 오수경

MC : 주혜빈, 황바울

삽화 : 이광일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 한성백제박물관, E-뮤지엄

연출 : 김형우, 이혁로, 이연식

기획 제작 : 아리랑TV미디어

【참고문헌】

〈資料 및 論著〉

金富軾, 『三國史記』, 李丙燾 譯註, 乙酉文化社, 1980.

一然, 『三國遺事』, 李丙燾 譯註, 廣曺出版社, 1980.

權相老, 『朝鮮佛敎史』, 1917.

權相老, 『朝鮮佛敎通史』, 1918.

李荇等, 『新增東國輿地勝覽』, 民族文化推進會, 1969.

朝鮮總督府, 『朝鮮寺刹史料』 上‧下, 1911.

朝鮮總督府, 『朝鮮金石總覽』 上‧下, 1919.

朝鮮總督府,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1942.

金映遂 編, 「智異山 實相寺 事蹟」, 『考古美術』108‧109, 韓國美術史學會, 1970, 1971.

考古美術同人會 編, 「崇巖山 聖住寺事蹟」, 『考古美術』 9卷 9號, 考古美術同人會, 1968.  

慶尙北道, 『石塔復元報告書』, 1980.

慶尙北道, 『地方文化財大觀』, 1980.

高裕燮, 『韓國塔婆의 硏究』, 乙酉文化社, 1948.

高裕燮, 『韓國美術史 及 美學論攷』, 通文館, 1963.

高裕燮, 『韓國建築美術史草稿』, 考古美術資料 第 6輯, 考古美術同人會, 1964.

高裕燮, 『朝鮮美術史料』, 考古美術資料 第10輯, 考古美術同人會, 1966.

高裕燮, 『韓國美術文化史論攷』, 通文館, 1966.

高裕燮, 『韓國塔婆의 硏究 - 各論草稿』, 考古美術資料 第 14輯, 韓國美術史學會, 1967.

高裕燮, 『韓國塔婆의 硏究』, 同和出版公社, 1975.

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3, 1981.

金理那, 『韓國古代佛敎彫刻史硏究』, 一潮閣, 1989.

김병모 외, 『歷史都市 慶州』, 열화당, 1984.

金元龍, 『韓國美術史』, 汎文社, 1968.

金元龍, 『韓國古美術의 理解』, 서울大學校 出版部, 1980.

金元龍‧尹武炳, 『感恩寺址發掘調査報告書』, 乙酉文化社, 1961.

金理那, 『韓國 古代 佛敎彫刻史 硏究』, 一潮閣, 1989.

金禧庚, 『韓國塔婆目錄』, 考古美術資料 第 4輯, 考古美術同人會, 1963.

金禧庚, 『韓國塔婆舍利目錄』, 考古美術資料 第 9輯, 考古美術同人會, 1965.

金禧庚, 『韓國塔婆硏究資料』, 考古美術資料 第20輯, 考古美術同人會, 1968.

金禧庚, 『塔』, 韓國의 美術 2, 悅話堂, 1980.

朴容淑, 『韓國美術論』, 一志社, 1975.

朴容淑, 『韓國의 始原思想』, 文藝出版社, 1987.

文明大, 『韓國彫刻史』, 悅話堂, 1980.

文明大, 『佛敎美術槪論』, 東國大 附設 譯經院, 1980.

文化財管理局, 『國寶圖錄』, 石塔篇, 1961.

文化財管理局, 『文化財大觀』, 國寶篇, 1967.

文化財管理局, 『文化財大觀』, 寶物篇 上‧中, 1976, 1968.

文化財管理局, 『우리나라의 文化財』, 1972.

文化財管理局, 『佛國寺 復元工事報告書』, 1976.

文化財管理局, 『文化遺蹟總覽』 上‧中‧下, 1977.

文化財管理局, 『文化遺蹟補修淨化誌』, 石造文化財篇, 1981.

文化財管理局, 『韓國의 古建築』, 韓國建築史硏究資料 第 7號, 1985.

朴慶植, 『統一新羅 石造美術 硏究』, 學硏文化社, 1994.

朴慶植, 『우리나라의 석탑』, 역민사, 1999.

朴慶植, 『탑파』, 예경, 2001.

朴慶植, 『석조미술의 꽃-석가탑과 다보탑』, 한길아트, 2003.

朴異汶, 『藝術哲學』, 文學과知性社, 1983.

申瀅植, 『韓國古代史의 新硏究』, 一潮閣, 1984.

申瀅植, 『統一新羅史硏究』, 三知院, 1990.

新羅文化硏究所, 『統一期의 新羅社會 硏究』, 1987.

林永周, 『韓國紋樣史』, 미진사, 1983.

藝術院, 『韓國美術史』, 1984.

藝術院, 『韓國美術事典』, 1985.

張忠植, 『韓國의 佛像』, 東國大附設 譯經院, 1983.

張忠植, 『新羅石塔硏究』, 一志社, 1987.

張忠植, 『韓國의 塔』, 一志社, 1989.

鄭永鎬, 『石塔』, 韓國의 美 9, 中央日報社, 1980.

鄭永鎬, 『石塔』, 대원사, 1989.

秦弘燮, 『三國時代의 美術文化』, 同和出版公社, 1976.

秦弘燮, 『韓國金屬工藝』, 一志社, 1980.

秦弘燮, 『韓國의 佛像』, 一志社, 1981.

秦弘燮, 『塔婆』, 國寶 6, 藝耕産業社, 1983.

秦弘燮, 『韓國美術史資料集成(1)』, 一志社, 1987.

秦弘燮‧崔淳雨, 『韓國美術史年表』, 一志社, 1981.

조선미술가동맹, 『조선미술사』, 한마당, 1989.

崔完秀, 『佛像硏究』, 知識産業社, 1984.

韓國佛敎硏究院, 『佛國寺』, 韓國의 寺刹 1, 一志社, 1974.

韓國佛敎硏究院, 『石窟庵』, 韓國의 寺刹 2, 一志社, 1974.

韓國佛敎硏究院, 『新羅의 廢寺Ⅰ』, 韓國의 寺刹 3, 一志社, 1974.

韓國佛敎硏究院, 『法住寺』, 韓國의 寺刹 5, 一志社, 1975.

韓國佛敎硏究院, 『海印寺』, 韓國의 寺刹 7, 一志社, 1975.

韓國佛敎硏究院, 『華嚴寺』, 韓國의 寺刹 8, 一志社, 1976.

韓國佛敎硏究院, 『浮石寺』, 韓國의 寺刹 9, 一志社, 1976.

韓國佛敎硏究院, 『新羅의 廢寺Ⅱ』, 韓國의 寺刹 12, 一志社, 1977.

韓國佛敎硏究院, 『梵漁寺』, 韓國의 寺刹 18, 一志社, 1979.

홍윤식, 『한국의 불교미술』, 대원정사, 1986.

黃壽永, 『韓國佛像의 硏究』, 三和出版社, 1973.

黃壽永, 『佛塔과 佛像』,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黃壽永, 『石塔』, 韓國美術全集 6, 同和出版公社, 1974.

黃壽永, 『韓國의 佛敎美術』, 同和出版公社, 1974.

黃壽永, 『佛敎美術史論』, 民族社, 1987.

黃壽永, 『석굴암』, 열화당, 1989.

黃壽永, 『石窟庵』, 藝耕産業社, 1989.

黃壽永, 『韓國의 佛像』, 文藝出版社, 1989.

杉山信三, 『朝鮮の石塔』, 彰國社, 1944.

밴자민 로울랜드, 崔旻 譯, 『東西美術論』, 열화당, 1982.

에른스트 피셔, 김성기 譯, 『예술이란 무엇인가』, 돌베개, 1984.

디트리히젝켈, 白承吉 譯, 『佛敎美術』, 열화당, 1985.

〈論文〉

姜仁求, 「提川 長樂里 模塼石塔 基壇部 調査」, 『考古美術』94, 考古美術同人會, 1968.

高裕燮, 「韓國塔婆의 樣式變遷」, 『東方學志』 2, 延世大東方學硏究所, 1955.

金禧庚, 「淸凉寺三層石塔의 舍利孔」, 『考古美術』65, 考古美術同人會, 1965.

金禧庚, 「韓國塔婆의 舍利臧置 小考」, 『考古美術』 106‧107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70.

金禧庚, 「韓國塔銘考」, 『考古美術』109, 韓國美術史學會, 1971.

金禧庚, 「韓國建塔因緣의 變遷-願塔을 中心으로」, 『考古美術』116, 韓國美術史學會, 1972.

金禧庚, 「韓國塔婆 硏究의 過去와 現在-塔의 變動을 中心으로」, 『佛敎美術』4, 東國大博物館, 1978. 史學會, 1975.

文明大, 「新羅四方佛의 起原과 神印寺(南山磨崖佛)의 四方佛」, 『韓國史硏究』18, 韓國史硏究會, 1979.

文明大, 「韓國塔浮彫(彫刻)像의 硏究(1)-新羅仁王像(金剛力士像)考」, 『佛敎美術』 4, 東國大博物館, 1979.

文明大, 「韓國四天王像의 硏究 - 韓國塔浮彫像의 硏究(2)」, 『佛敎美術』5, 東國大博物館, 1980.

邊太燮, 「新羅官等의 性格」, 歷史敎育』 1, 歷史敎育硏究會, 1956.

朴慶植, 「新羅 九世紀 石塔의 樣式에 關한 硏究」『考古美術』173, 韓國美術史學會, 1987.

朴慶植, 「新羅 九世紀 石塔의 特性에 關한 硏究」, 『蕉雨黃壽永博士古稀紀念美術史學論叢』, 通文館, 1988.

朴慶植, 「新羅 景文王代의 石造美術에 關한 硏究」, 『史學志』22, 檀國大 史學會, 1989.

朴慶植, 「新羅 9世紀 石造美術의 特性」, 『史學志』24, 檀國史學會, 1991.

朴慶植, 「新羅 9世紀 石造美術의 建立背景 ̄景文王系의 改革政治를 中心으로」, 『中濟 張忠植博士回甲記念論叢』, 檀國大學校, 1992.

朴慶植, 「和順 雲住寺의 石塔에 대한 考察」, 『博物館紀要』5, 檀國大學校 中央博物館,

朴慶植, 「8‧9世紀 石塔의 比較 硏究」, 『東洋學』 27집, 檀國大 東洋學硏究所, 1997.

朴漢植, 『新羅景文王代 佛敎美術의 硏究』, 東國大學院碩士學位論文, 1980.

柳宗昊, 「襄陽地區塔婆 및 浮屠硏究」, 『關東大論文集』7, 關東大學校, 1979.

柳宗昊, 「韓國彫飾塔婆에 대한 硏究」, 『關東大論文集』8, 關東大學校, 1980.

尹容鎭, 「慶北 英陽郡의 塔像(1)」, 『考古美術』40, 考古美術同人會, 1963.

尹容鎭, 「慶北 英陽郡의 塔像(2)」, 『考古美術』41, 考古美術同人會, 1963.

李殷昌, 「保寧聖住寺址調査報告」, 『亞細亞硏究』10-4, 高麗大亞細亞問題硏究所, 1967.

張忠植, 「統一新羅 石塔浮彫像의 硏究」, 『考古美術』154‧155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82.

鄭永鎬, 「丹陽 香山里三層石塔」, 『考古美術』7 - 11, 考古美術同人會, 1963.

鄭永鎬, 「襄陽 陳田寺址 三層石塔과 石造浮屠」, 『考古美術』83, 考古美術同人會, 1963.

鄭永鎬, 「襄陽 禪林院址에 대하여」, 『考古美術』7 - 6, 考古美術同人會, 1966.

鄭永鎬, 「襄陽 陳田寺址遺蹟調査-石塔과 浮屠의 復元을 契機로」, 『歷史敎育』11‧12合輯, 歷史敎育硏究會, 1969.

鄭永鎬, 「永同 寧國寺의 遺蹟」, 『李弘稙博士回甲紀念韓國史學論叢』, 新丘文化社, 1969.

鄭永鎬, 「韓國石塔의 特殊樣式考察」上, 『論文集』3, 檀國大學校, 1969.

鄭永鎬, 「韓國石塔의 特殊樣式考察」下, 『論文集』4, 檀國大學校, 1970.

鄭永鎬, 「寶林寺 三層石塔內 發見 舍利具에 대하여」, 『考古美術』 123.124 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72.

鄭永鎬, 「高麗時代石塔의 特性에 관한 硏究」, 『論文集』11, 檀國大學校, 1977

丁元卿, 『新羅下代 願塔建立에 關한 硏究』, 東亞大學院 碩士學位論文, 1982.

秦弘燮, 「提川 長樂里 模塼石塔 舍利孔」, 『考古美術』90, 考古美術同人會, 1968.

秦弘燮, 「漆谷 箕城洞三層石塔」, 『考古美術』102, 韓國美術史學會, 1969.

秦弘燮, 「韓國의 眼象紋樣」, 『東洋學』4, 檀國大學校 東洋學硏究所, 1974.

秦弘燮, 「異形石塔의 一基壇形式의 考察」, 『考古美術』138‧139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78.

秦弘燮, 「異形石塔의 一基壇形式의 考察補」, 『考古美術』146‧147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80.

秦弘燮, 「統一新羅時代 特殊樣式의 石塔」, 『考古美術』158‧159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83.

黃壽永, 「우리나라의 塔」, 『思想界』4‧5월호, 思想界社, 1961.

黃壽永, 「新羅 敏哀大王 石塔記-桐華寺毘盧庵三層石塔의 調査」, 『史學志』 3, 檀國大史學會, 1969.

黃壽永, 「新羅 皇龍寺 九層木塔 擦柱本紀와 그 舍利具」, 『東洋學』3, 檀國大 東洋硏究所, 1973.

黃壽永, 「多寶塔과 新羅八角浮屠」, 『考古美術』123‧124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74.

黃壽永, 「新羅의 典型石塔」, 『考古美術』158‧159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83.

洪思俊, 「䥐藏寺址石塔 復元에 대하여」, 『考古美術』34, 考古美術同人會, 1963.

洪思俊, 「聖住寺址石塔 解體와 組立」, 『考古美術』113‧114合輯, 韓國美術史學會, 1972.

CALAMBUR SIVARAMAMURTI, 『THE ART OF INDIA』, INDIA BOOK HOUSE, 1977.

DEBALA MITRA, 『SANCHI』,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1992.

SUSAN L. HUNTINGTON, 『THE ART OF ANCIENT INDIA』, WEATHER HILL, 1993.

宮治 昭, 『インド 美術史』, 吉川弘文館, 1993.  

J. C. HAREL, 『THE ART AND ARCHITECTURE OF THE INDIAN SUBSCONTINENT』, YALE UNIVERSITY PRESS, 1994.

CALAMBUR SIVARAMAMURTI, 『THNSGJSE ART OF INDIA』, INDIA BOOK HOUSE, 1977.

Mario Bussagli, 『5000 Years of the Art of India』, ABRAMS,

〈박경식〉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