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한국의 성

벼농사 시작

농경의 본격화

생산경제체재 돌입된 청동기 시대

지켜야 할 것이 생겼다.

그래서 등장한 방어시설

산성과 석성

산성과 석성의 나라

우리나라는 산성의 나라라고 합니다.

산성의 나라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농경이 성행하면서 생산물의 분배를 둘러싼 집단 간의 갈등

도랑이라 불린 환호를 설치한 고대인

하지만 사다리 같은 것을 이용해 건너오기 시작하자

목책을 세워 방어시설을 더욱 견고히 했으나

상대편에서 불로 목책을 태우자 다른 방법을 고안

목책마저 불타버리자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토성입니다.

목책보다는 견고했던 토성

비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성을 쌓는 방법을 개발

판축기법

목판을 세우고

점질토와 모레성분이 있는 마사토를

교대로 쌓음

한겹 한겹 직경 10cm의 나무기둥을

찧어가며 축조

초기의 토성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

전쟁이 격화되면서 유사시에 장기적으로 농성하거나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교통 요지에

위치한 산 정상 부분에 성을 쌓기 시작.

우리나라가 산이 많다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산성을 많이 쌓았다.

이로써 본격적인 산성의 탄생이 이뤄졌다.

도성, 왕성, 산성

남한에만 약 2천여 개 소 이상의 산성

성(城) / + / 곽(郭) = / 성곽

도읍지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

도성

- 곽성 : 도읍지 전체를 에워싸는 성(나성)

- 내성 : 왕이 거처하는 내성을 축조(왕성)

왕성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수도의 도성

군사적 방어용의 산성

산성의 형태

고대 산성은 높은 산봉우리의 정상부에 축조

도성, 왕성은 평지, 구릉 위에 축조

○ 민보집설

고종때 훈련대장 신관호

민보집설에 산성 축조의 유리한 지형에 대해 말했다.

1. 고노봉형 : 사방이 높고 중앙부가 낮은 지형

2. 산봉형 : 정상부가 평탄하고 넓으며 사방이 급격한 경사로 이루어진 지형

3. 사모봉형 : 배후에 높은 지세 조건을 간춘 지형

4. 마안형 :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잘록하고, 낮게된 지형

그후 일제강점기에 발굴이 진전되면서 우리나라 산성은 포곡식 산성과 테뫼식 산성으로 나눴다.

포곡식 : 계곡을 포함한 성곽

테뫼식 : 산의 정상부 가까이에 성벽이 축조된 성곽

성곽은 입지에 따라 평지성, 산성, 평산성으로 나뉘었습니다.

우리나라 성곽의 대부분은 산성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산성은 자연지형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곽 시설

해자 : 성벽 바깥쪽에 돌려져 있는 도랑

주로 평지성, 평산성 형태에서 발견

옹성 : 적이 성문을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문 바깥쪽에 한 겹 덧댄 성벽

치성 :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성 위의 군사가 몸을 은폐하거나 적의 화살로부터 몸을 피하는 데 이용

적들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게 만든 담장

여장 :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여장(女墻)은 여담 또는 여첩(女堞), 타(垜), 성가퀴 등으로 불림.

여장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토성에도 여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석성에는 대부분 여장이 있다

주목되는 성곽의 부대시설

성곽의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

성문

성곽 내에 남아 있는 건축물의 흔적

건물지

석성을 이루는 구성요소 중에 중요한 것은 성벽!

성벽을 이루는 것은 성돌과 성문이 있습니다.

성돌은 시대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달라집니다.

백제

외면을 성돌로 축조한 다음, 안쪽은 흙으로 뒤채움

바른층 쌓기

성돌의 크기가 하단부, 상단부 동일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한단 한단 바른층 쌓기 방식

다듬은 성돌을 이용하여, 성돌과 성돌 사이 틈새가 없다.

신라

성돌을 가공해서 축조

납작한 판석형의 석재를 이용

벽돌처럼 얇고 옆으로 길게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

3 : 1 세장형의 성돌

신라의 석성

보은 삼년산성, 충주 충주산성. 온달산성, 단양 적성

신라의 산성

모전석형 성돌이 특징

단양 적성, 충주 충주산성, 양주 대모산성, 이천

설성산성

성돌의 두께 15∼20cm

좌우의 너비 40∼60cm

벽돌처럼 다듬은 성돌

성문의 형태

성곽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행로

출입이 어려운 곳에 성문을 개설한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이후

출입이 편리한 곳에 성문을 개설

평문식 현문식
성문을 중심으로 안팎의 지면이 일자로 연결된 성문
성내의 지면이 높고, 성 밖의 지면이 낮아서 성 밖에서 성내로 들어오기 위해 계단이나 사다리를 이용해야 하는 성문
단차가 없는 형태 단차가 있는 형태
평지나 낮은 구릉에 위치 주로 계곡부에 위치

치소

고려말, 조선초

왜구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읍성이 축조됐다.

급격한 당시의 상황에 따라 치소의 위치가 중요했다.

조선 전기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말, 조선 초 시절

그 지역을 다스리던 치소성은 산봉에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나온다.

우리나라 산성의 특징

고대의 산성은 각각 식량 창고를 갖추었는데, 평상시 통치의 거점이자, 유사시 방어의 거점

산성은 산이 많은 우리의 지형에 걸 맞는 방어시설로 작전을 펼치는데 유리했다.

산성은 주요 교통로에 위치 이는 적이 쳐들어오면 모두가 산성 안으로 들어가 항쟁하는 농성(籠城)을 하면서

적을 내지 깊숙이 끌어 들여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해안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방어 시설 등장

읍성

1910년에 일제에 의해 읍성철거령이 내려지면서 대부분이 훼손

현재 해미읍성, 낙안읍성, 고창 모양성 등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

성돌 하나 하나가 모여 성벽이 되고 성벽이 쌓이면 성을 이루었다.

그렇게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쌓아 중국의 거듭된 침략으로부터

내 가족, 내 백성,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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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자문 : 서정석

시나리오 구성 : 안현진, 김민상

성우 : 오수경

MC : 주혜빈, 황바울

삽화 : 이광일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 한성백제박물관, E-뮤지엄

연출 : 김형우, 이혁로, 이연식

기획 제작 : 아리랑TV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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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석〉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