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기와

선의 미학, 기와

초기 기와 역할

지붕에 기와를 얹기 위해서는 건축술의 발달과 기와를 만드는 기술의 발달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와는 단순한 건축 부재를 넘어 건물의 품격을 상징하는 역할도 했다.
초기의 기와집은 궁궐이나 관청, 사찰과 같은 종교 시설 및 제의 시설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

기와의 변천

낙랑의 기와는 그 후 고구려나 백제에도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에서 기와집이 출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기와의 형태

- 수키와
원통을 반으로 자른 형태로  지붕 바닥에 이어진 두 암키와 사이에 이어져 기왓등을 형성
- 암키와
직사각형 모양의 네모난 기와로 지붕의 바닥에 속 면을 밖으로 향하도록 이어져 기왓골을 형성
- 수막새
수키와의 한쪽 끝에 원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기왓등 끝에 사용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계속 사용
연꽃무늬를 비롯한 갖가지 무늬
- 암막새
암키와의 한쪽 끝에 약간 위로 휜 장방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
백제 말이나 통일신라시대부터 제작, 사용
당초무늬를 비롯한 다양한 무늬

시대별 기와 - 고구려

장군총
연꽃무늬를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 수막새
연꽃잎 좌우에 작은 점을 찍어 돌기를 배치
장식적인 아름다움과 고결한 상징성으로 인해 고대부터 즐겨 사용한 문양

▸ 고구려 기와의 특징
- 평양천도를 기준으로 앞 시기와 약간의 차이를 보임
- 초기에는 권운문 수막새가 제작되지만 점차 연화문이 주류적인 위치 차지
- 고구려 연화문수막새는 구획선 안에 꽃봉오리 모양을 볼록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
- 후기가 되면 꽃의 형태가 은행 알 모양으로 단순화되고 보상화문이나 수면문 등 다양한 무늬가 함께 사용됨

시대별 기와 - 백제

- 한성기
초화문수막새 - 풍납토성 신우연립 및 1지구 출토 전문수막새
풍납토성 연화문와당 - 풍납토성 197번지 일대 출토
- 웅진기
연화문수막새 - 공주 대통사지 출토
8엽의 연꽃잎에 작고 낮은 자방이 배치되고 연꽃잎 끝이 살짝 반전되는 특징
- 사비기
수막새

- 익산 미륵사지
사비기,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녹유서까래기와
녹색 유약이 발라진 써가래 기와가 출토
7엽의 연화문이 장식
연꽃잎 안에 인동문 자엽이 정교하고 아름답게 배치
- 신라
연화문수막새 - 월성출토
연화문수막새 - 월성, 안압지 출토
- 통일신라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기와
중판연화문 수막새, 당초문 수막새, 당초문 암막새
통일신라 시대의 연화문 이외에도 보상화문, 당초문, 초화문 서조문, 기린문, 사자문, 귀면문 등 다양한 무늬 등장
고구려의 보상화문 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발전
당초문은 수막새뿐 아니라 암막새에서 특히 다양한 변형을 보이면서 널리 사용됨
새무늬수막새(영묘사지 출토)
쌍조문수막새(감은사지 출토)
고대인들은 새를 천상과 지상을 넘나들며  
두 세계를 이어주는 전달자의 역할을 한다고 믿음

▸ 신라 기와의 특징
- 다른 나라 보다 늦은 5세기말이나 6세기 초부터 기와가 출현
- 처음에는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을 받지만 점차 독자적인 문양과 형태를 가진 기와를 제작
-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문양이 화려해지고 연화문 이외에도 당초문이나 보상화문 등 다양한 종류의 문양이 사용되는 등 새로운 단계로 접어듦
- 이 시기에는 두 개의 연꽃잎이 겹쳐서 표현된 복판이나 두세 겹의 연꽃잎이 있는 중판이 유행
- 통일신라시대 기와의 무늬는 사찰마다 다르고, 사찰의 건물마다 달라지는 등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임

고려 시대

고려 시대 대표 기와
귀목문수막새 (파주 해음전 출토)
범자문수막새와 암막새 (충주 미륵사지 출토)
청자양각모란문수막새 (출토지미상)

조선 시대

귀목명문암막새(출토지미상)
인면문망와(출토지 미상)
용문암막새(출토지 미상)
청유용문수막새(경복궁 교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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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자문 : 이병호
시나리오 구성 : 안현진, 김민상
성우 : 오수경
MC : 주혜빈, 황바울
삽화 : 이광일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 한성백제박물관, E-뮤지엄
연출 : 김형우, 이혁로, 이연식
기획 제작 : 아리랑TV미디어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