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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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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 중 하나인 전라남도 강진청자축제!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청자축제에 매년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낙양의 꽃,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의 자기, 절강의 칠기, 오의 종이…
고려비색…
모두 천하제일인데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송나라 태평노인의 [수중금(袖中錦)] 천하제일(天下第一)조에서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천하제일’이라고 칭송했던 고려청자, 그 고려청자를 지금 만나봅니다.

천하제일, 고려청자만의 비법은?

청자의 제작기법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서 전 세계에서도 중국과 고려에서만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 당시에 청자를 만들던 중국과 고려는 흙의 성질을 잘 이해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청자를 만들 수 있는 흙에는 산화철 성분이 일정 정도 포함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불을 어느 정도로 때야 되는지를 당시 장인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 조은정 학예사 / 고려청자박물관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한 고려청자의 뛰어난 제작 비법이 있었으니, 바로 푸른색을 내는 유약이었습니다.
고려청자의 푸른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한 색을 띠었는데요.

陶器色之靑者麗人爲之翡色
청자의 색을 고려인들은 비색(翡色)이라 부른다. - 『선화봉사고려도경』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이 기록

그 색을 비취옥의 색과 비슷하다 하여 비취색, 또는 비색이라고 불렀습니다.

푸른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속에 묻혔었나. - 이규보(1168~1241), 『동국이상국집』 제8권

고려 시대 문인이었던 이규보도 좋은 청자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 푸른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고려청자의 비색은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려청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술이 또 있습니다!
네, 바로 상감기법입니다.

고려의 상감기법은 그릇의 표면에 도구를 이용해서 문양을 파낸 후, 그곳에 하얀색의 백토와 붉은 색의 자토로 채워 넣어 문양의 사실적인 느낌과 생동감이 느껴지게 하는 고도의 기술이었습니다.

또 청자의 형태나 문양을 동물과 식물의 모습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점도 고려청자의 특색입니다.

특히 고려청자에 많이 표현된 운학문 문양은 서정적인 표현과 구성 등을 보여주는 고려청자의 특징적인 요소입니다.
이는 당시 고려 사회의 도교적인 성향을 반영한 건데요.

고려의 중심이었던 불교와 도교 사상이 청자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고려청자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습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보물선이 발견됐습니다!
고려 시대 때 침몰한 이 배에는 약 2만 3천 점의 고려청자가 쌓여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태안 앞바다에서는 수많은 고려청자들이 발견됐는데요.
대부분 전라남도 강진과 내륙에서 제작한 청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수많은 고려청자가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걸까요?

고려청자가 바다로 간 까닭은?

청자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흙인데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해안가에 청자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흙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의 청자는 품질이 우수해서 주로 왕실의 청자로 사용되었는데요.

특히 강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청자 가마터들이 있고 ,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장기간 운영된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각 지역의 곡물과 특산물 등을 세금으로 걷어 수도인 개경에 납품을 했는데요. 청자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육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운반이 쉽지 않아 해안가에 13개의 조창을 설치하고 선박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개경까지 운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해안은 조류가 빠르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서 선박이 좌초되거나 침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가 많이 발견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난파선에서는 당시 시대상과 유통과정을 알 수 있는 목간들이 발견됐는데요.

耽津縣(옛날 강진, 생산지) 在京(개경, 수송지) 隊正仁守戶(수취인) 付 砂器八十(그릇 수량)

생산 지역부터 수송지, 수취인, 수량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또 당시 청자를 어떻게 포장해서 운반했는지도 알 수 있는데요.
큰 항아리에 짚을 깔고 넣은 고급 청자부터 30~40개를 포갠 후 새끼줄로 고정시킨 하품의 청자들도 많았습니다.

마도2호선에서 발굴된 고려청자매병에는 대나무 화물표가 매달려 있었는데요.

중방도장교오문부/택상진성준봉(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眞盛樽封) 중방도장교오문부/택상정밀성준봉(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精蜜盛樽封)

모두 개경의 중방 소속이었던 오문부라는 하급무관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꿀(精蜜) / 참기름(眞)

오문부의 집으로 꿀과 참기름을 매병에 담아 보낸다는 내용인데요.

그동안 매병은 술이나 물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했지만, 이 기록을 통해서 매병에 꿀과 참기름 등 귀한 식재료를 보관하고 운반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외에도 고려청자는 그릇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용품들과 고급 청자기와, 벽과 바닥을 장식한 판까지 그 형태나 종류도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처음엔 중국에서 수입됐지만 독자적으로 최고의 청자유약 기술을 개발하고 또 신비로운 비색과 독특한 문양을 창조해낸 고려청자!
바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고려청자는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천하제일이라고 칭송했다.
2. 고려청자의 푸른색을 비색(비취색)이라고 부른다.
3. 고려청자만의 독창적인 문양기법은 상감기법이다.
4. 각 지역의 청자는 주로 서해 바다를 통해 개경까지 운반됐다.

해설

나무를 베어 남녘 산이 벗겨지고
불을 피워 연기가 해를 가리웠지
푸른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속에 묻혔었나
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
단단하기는 돌과 맞먹네 이규보(1168~1241), 『동국이상국집』제8권 고율시

800여 년 전 이규보라는 고려 시대 문인은 청자 술잔(綠甆盃)을 아름답게 시로 읊은 것이다. 지금은‘청자’로 통일해서 부르지만 고려 시대에는‘沙器’사기,‘砂器’사기,‘靑瓷’청자, ‘綠瓷’녹자,‘靑陶器’청도기,‘靑沙(器)’청사(기) 등 다양하게 불리웠다. 시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문장에서는 산이 벗겨질 정도로 많은 땔감과 함께 가마 굴뚝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해를 가릴 정도였다고 하여 청자를 가마에 넣어 굽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또‘몇 번이나 짙은 연기속에 묻혔었나’는 초벌구이(初燔)와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再燔)를 해야만 하는 제작과정을 표현한 대목이다. 그가 청자 굽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후에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자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처럼 좋은 품질의 청자를 선별하는 과정까지 매우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청자와 관련된 정보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땔감 마련을 위해 주변 야산의 나무가 베어지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웠을 그 곳이 바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이다. 강진은 당시 왕실이 있던 개성과는 지금도 시원스럽게 뚫린 고속도로를 이동해도 470km가 넘는 먼 곳이다. 당시에는 육로보다는 운송기간이 짧고 안전한 서해안 연안 항로로 도자기를 운반했다. 당시 고려사회에서 청자는 금, 은, 철, 종이, 소금, 먹, 미역 등과 같이 현물로 걷는 세금중에 하나였다. 강진만(康津灣)을 통해 해남, 진도, 목포를 거쳐 보령, 태안, 강화도, 예성강으로 이어지는 수운(水運)을 이용한 것이다.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가 크고 곳곳에 조류가 심한 지역이 많아 청자 운반선이 많이 좌초되어 침몰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해저유적이 충남 태안 죽도(竹島)와 마도(馬島) 인근이며, 중요한 것은 청자에 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화물표가 묶여 있어서이다. 이 목간이나 죽간에는 청자의 생산지, 수령자, 발송 책임자 등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청자는 여러 곡식과 마찬가지로 현물세금으로 걷히기도 하고, 개경의 귀족이 주문생산을 요청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먼 거리에서 수만 점의 청자를 실은 운반선이 침몰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강진에서 청자를 공급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연코 그 품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시대 당시에도 청자의 오묘한 빛깔을 문자로 표현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푸르다는 의미의‘綠’을 쓰기도 하고, 파랗다는‘靑’을 쓰기도 했지만 중국인들에게까지 알려진 것은‘翡色’비색 이라는 별도의 명칭이었다. 청자의 비색은 회색을 띠는 태토(胎土, 그릇의 몸체가 되는 흙)위로 약간 투명하고 맑으면서도 녹색 빛 또는 파란색 빛을 띠는 유리와 같은 유약 층이 겹쳐져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태토의 색과 유약 층의 두께, 유약 층에 들어있는 미세한 기포(氣泡)의 많고 적음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러한 비색의 유약과 함께 상감(象嵌)이라고 하는 독특한 문양 표현기법은 고려 시대 청자의 특징을 대표한다. 가는 선으로 문양을 새기는 음각(陰刻), 문양을 도드라지게 깎는 양각(陽刻), 기벽을 뚫어 구멍을 내는 투각(透刻), 문양을 손으로 빚어 붙이는 첩화(貼花), 문양이 새겨진 도장으로 눌러 찍는 인화(印花)기법 등은 고려 시대 이전부터 이미 시도된 방법이다. 그러나 구웠을 때 다른 색을 띠는 흙을 음각한 부분에 메워 넣어 문양이 태토 자체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표현하는 상감기법은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문양 표현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압출양각(壓出陽刻), 철화(鐵畵), 백화(白畵), 철백화(鐵白畵), 철채(鐵彩), 철채상감(鐵彩象嵌), 철유(鐵釉), 동화(銅畵), 동채(銅彩), 연리문(練理文)기법 등이 있다. 이러한 기법은 흙 속에 함유된 산화철(酸化鐵)이나 산화동(酸化銅)의 함량 조절과 1,100℃이상의 고온에서 휘발되지 않도록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청자는 고려 시대 500여 년에 걸쳐 오랜 기간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려 초기부터 말기까지 시기별 특징이 비교적 뚜렷하다. 중국 청자제작 기술의 영향을 전적으로 수용했던 고려 초기에는 가마의 축조 재료와 구조, 가마안에 청자를 재임할 때 사용하는 요도구(窯道具), 그릇의 종류와 형태까지 중국 청자와 유사성이 매우 많다. 그러나 시기가 지나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가마의 크기를 줄여서 진흙으로 다져 만들고, 그릇의 종류와 형태도 고려화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좋은 품질의 청자를 생산해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발, 접시, 완, 잔, 병 등의 음식기뿐만 아니라 향로, 정병, 촛대, 도장, 화분, 벼루, 의자, 베개, 숟가락, 장고, 종 등도 만들었다. 또 건물의 기와와 벽면 또는 바닥을 장식했을 것으로 보이는 판(타일)도 청자로 제작했는데, 이 유물들은 생산지였던 강진 청자가마터와 소비지였던 개경 만월대 왕궁터, 대규모 사찰터에서 확인되었다.

고려청자는 중국청자와 달리 문양 표현기법도 다양하고 문양의 종류 또한 식물, 동물, 도석인물 등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와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고려청자의 절정기에 해당하는 12세기 이후 강진에서 제작된 청자의 문양은 중국과는 달리 새로운 문양 소재나 서정적인 표현과 구성 등을 보이고 있어 고려만의 독창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운학문(雲鶴文)이다. 운학문은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기법으로 청자에 시문되었는데, 고려 사회의 도교적 성향을 나타낸 대표적인 문양이다. 또 거문고를 타는 인물과 함께 굵은 솔방울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모습의 소나무가 표현되어 있는 문양도 있다. 청자 매병에 묘사된 구름, 학, 소나무, 거문고 등의 도상을 구성하는 요소는 당시 고려 문인들의 시에서도 신선과 관련된 소재로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청자 문양에는 연꽃, 국화, 모란, 매화, 훤초, 황촉규 등 꽃이 소재로 사용된 경우가 많은데, 각각의 화문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특히 모란은 중국에서도 당대부터 송대에도‘서모란(瑞牡丹)’이라고 하여‘상서로운 모란’은 하늘이 내리는 위정자(爲政者)의 선정(善政)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름철에 피면서 노란색의 엷은 꽃잎이 특징인 황촉규도 모란처럼 왕권을 상징하는 의미가 확인되는 경우이다. 왕을 칭송하고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문양에는‘물가풍경’을 소재로 하여 묘사된‘유로수금문(柳蘆水禽文)’도 있다. 유로수금문은 물가를 배경으로 얕은 언덕에 갈대나 버드나무가 위치하고, 오리, 원앙, 기러기 등 水禽류가 주요 구성 요소로 등장한다.

청자의 여러 문양들은 단순하게 장식을 위한 이미지가 아니라 신선, 장생불사(長生不死), 왕의 치세(治世)에 대한 찬양과 태평성대 염원 등을 의미하는‘표징’으로서 기능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상황에 맞게 변형되거나 독창적인 문양으로 재창조되었다. 비색의 유약과 상감기법을 비롯한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기술, 원료의 특성 파악과 다양한 문양 표현기법 시도, 불교와 도교, 왕에 대한 칭송과 태평성대 염원을 담은 상징적 문양 등은 모두 고려청자만의 독창성을 이루는 요소이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단행본

  • 강경숙, 2005, 『한국 도자기 가마터 연구』, 시공아트
  • 강경숙, 2012, 『한국도자사 연구』, 예경
  • 국사편찬위원회, 2010,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김윤정 등 저, 2015, 『한국도자사전』, 경인문화사
  • 윤용이, 1993, 『한국도자사 연구』, 문예출판사
  • 정양모, 1990, 『한국의 도자기』, 문예출판사
  • 장남원, 2005, 『고려중기 청자 연구』, 혜안

전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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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1989, 『고려청자명품특별전』
  • 국립중앙박물관, 1992, 『고려도자명문』
  • 국립중앙박물관, 2011, 『자연의 노래 유천리 고려 청자』
  • 국립중앙박물관, 2012, 『천하제일 비색청자』
  • 국립중앙박물관, 2015, 『강진 사당리 고려청자』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3, 『매병 그리고 준, 향기를 담은 그릇』
  • 호림미술관, 2017,『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

보고서

  • 강진군·(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 2015, 『강진 사당리 43호 고려 청자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 강진군·(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 2015, 『강진 용운리 63호 고려 청자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 국립광주박물관, 2004, 『강진 삼흥리요지』Ⅱ
  • 국립중앙박물관, 2011, 『부안 유천리 도요지 발굴조사보고서』
  • 국립중앙박물관, 1996, 『강진용운리청자요지 발굴조사보고서』 도판 편
  • 국립중앙박물관, 1997, 『강진용운리청자요지 발굴조사보고서』 본문 편
  • 국립중앙박물관, 2015, 『강진 사당리 도요지 발굴조사 보고서』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09, 『태안대섬 수중발굴 조사보고서 고려청자운반선』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0, 『태안마도1호선수중발굴보고서』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1, 『태안마도2호선수중발굴보고서』
  • 부안군·원광대학교박물관, 2011, 『부안의 고려청자』
  •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85, 『고창아산댐 수몰지구 발굴조사보고서』
  • 호남문화재연구원, 2004, 『강진 삼흥리요지』I
  • 호암미술관, 1987, 『용인 서리 고려백자요』
  • 해강도자미술관, 2001, 『방산대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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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1, 『해양문화재』4호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2, 『해양문화재』5호
  • 이종민, 2006, 「고려 시대 청자 매병(梅甁) 연구」, 『강좌미술사』27,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이종민, 2011, 「泰安 馬島 해저출토품으로 본 고려 중기 청자의 편년문제」, 『이화사학연구』 42권,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 장남원, 2001, 「'康津유형'의 공유 현상을 통해 본 11 ~ 12세기 청자의 성격」, 『미술사학연구』231호, 한국미술사학회
  • 장남원, 2004, 「고려중기 압출양각 청자의 성격」, 『미술사학연구』 242·243호, 한국미술사학회
  • 정양모, 2013, 「新發見 靑磁三色(白·黑·暗灰色)象嵌과 靑磁象嵌의 再考察」, 『東垣學術論文集』제14輯,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