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방
제목 | 도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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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都房 |
유형 | |
시대 | 고려 시대 |
관련국가 | 고려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고려 무신 집권기에 경대승(慶大升, 1154~1183)이 최초로 조직하고 최씨 정권에 의해 본격적으로 운영된 무신 집정자의 사병 집단.
[내용]
1179년(명종 9)에 경대승이 처음으로 조직하였다. 정중부(鄭仲夫, 1106~1179)를 제거하고 집권한 경대승은 기존 무신 세력과 관계가 악화되면서, 자신의 신변을 보다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사병 100여 명을 모아 숙직하며 자신을 호위하게 하고 이를 도방이라 불렀다. 도방은 처음에는 경대승의 신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점차 경대승의 호위에 그치지 않고 반대 세력의 움직임을 탐지하여 형벌을 내리거나 숙청하는 역할 등을 담당하였다. 또한 당시 개경(開京)에는 스스로 도방의 구성원이라고 칭하는 도적떼가 일어났는데, 관부에서 이들을 체포하면 경대승이 석방해 주었으므로 공공연히 약탈을 자행하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183년(명종 13)에 경대승이 병사하자, 대거 귀양을 가고 죽임을 당하면서 해체되었다.
최충헌(崔忠獻, 1149~1219)이 집권한 후 1200년(신종 3)에 도방은 전보다 큰 규모로 재건되었다. 최충헌은 도방을 6번(番)으로 나누어 각 번마다 교대로 숙직하게 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최우(崔瑀, ?~1249) 대에는 도방을 다시 내도방과 외도방으로 확대⋅개편하였다. 도방은 최우의 개인적 신변 호위뿐만 아니라 반란군의 토벌이나 토목 공사 등도 맡았다. 그러나 삼별초(三別抄)가 조직된 후 공적인 업무는 축소되고 이전의 호위 업무로 복귀하였다. 최우가 죽은 뒤 도방은 36번제로 확장되었다가 6번제로 회귀하는 등 조직이 변동되기도 하였다. 결국 도방은 마지막 무신 집권자인 임유무(林惟茂, ? ~ 1270)가 몰락한 후에 해체되었다.
▶ 관련자료
- ㆍ도방(都房)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최충헌의 봉사10조
-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최씨 정권의 성립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무신 정권의 성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