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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참

제목 도참
한자명 圖讖
유형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고려, 조선
유의어 참(讖), 참위(讖緯)
별칭•이칭

[정의]

앞으로 일어날 일의 길흉화복을 암시나 상징을 통해 예언하는 것.

[내용]

도참(圖讖)은 도(圖)와 참(讖)을 합쳐서 부른 말이다. 도(圖)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 주는 신호나 상징, 전조, 암시를 문자⋅기호 등을 통해 나타내며, 참(讖)은 상징적 언어로 미래의 일을 알려 주는 일종의 예언을 가리킨다. 도참사상은 이미 삼국 시대부터 유행하였는데, 왕조가 멸망하거나 세워질 때나 수도의 건설이나 이전 과정에서 많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도참은 십팔자참설(十八子讖說)이다. 이것은 ‘이(李)’라는 글자를 분해해서 이용한 도참으로, 이씨 성을 지닌 사람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고려 시대에도 십팔자참설이 있었는데, 이자겸(李資謙)이 쿠데타로 인종(仁宗)을 감금한 뒤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할 때, 이를 이용하였다. 이후 무신 정권 때 이의민(李義旼) 역시 이 십팔자참설을 믿어 경주에서 신라 부흥을 꾀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있으며,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역시 십팔자참설을 은연중에 이용했다.

도참사상은 풍수지리(風水地理)와 결합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려 시대 묘청(妙淸)은 서경 천도 운동에서 서경으로 천도하면 금나라가 항복하고, 36개국이 조공을 바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도선비기(道詵秘記)』를 통한 풍수도참이 이용됐다.

조선 시대 성리학이 수용되어 유교적 합리주의가 보편화되면서 신비주의적 도참사상은 큰 영향력을 갖기 어려웠다. 그러나 기묘사화(己卯士禍)라는 정치적 격변기에 조광조(趙光祖)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참설로 인해 죽음을 맞았고, 정여립의 난에서는 ‘목자망전읍흥(木子亡奠邑興)’이라는 참설이 돌았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은 술사(術士)의 예언에 따라 궁궐 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하여 비판 받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이 민간에서 크게 유행하였는데, 실제로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의 과정에서 활발히 전파되기도 하였다. 철종(哲宗, 재위 1849~1863) 대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에서도 각종 예언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정부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도참이 유포되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사회가 혼란하거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때 도참은 더 활발히 유포되었다.

[의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연결 고리가 없어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띤 도참사상은 합리적인 사회에서는 발붙이기 어렵다. 정치적 격변이나 사회 혼란 속에서 민심은 도참에 더욱 현혹되었다. 도참은 한편에서는 정치 세력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 정치 세력에 저항하는 민중 운동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 관련자료

ㆍ도참(圖讖)
ㆍ도참서(圖讖書)
ㆍ음양 도참설(陰陽圖讖說)
ㆍ참위(讖緯)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