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부는 1914년에 '시장 규칙'을 공포해 농촌 장시를 통제하려 하였다. 이는 원시적 시장 제도로 간주되던 장시가 소멸될 것을 예상하고, 행정·경찰 기구를 앞세워 장시를 관리함으로써 한국인들의 일상생활까지 규제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기의 장시는 각지에서 확대·발전했을 뿐 아니라, 1919년 3·1 운동 당시에는 민중의 만세 시위 참가를 촉발하는 사회·문화적 자원으로도 기능했다. 이에 조선 총독부도 장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1930년대에 이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총독부의 정책을 선전하는 방안을 고려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