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은 대개 식민지 조선에서 한국인과는 별도로 자기들만의 커뮤니티 안에서 생활하였다. 이들이 낯선 땅에서 식민자로서 정착하는 데는 고향에서의 혈연, 지연, 학연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조선에서도 같은 고향 출신끼리 현민회(県民会)를 조직하는가 하면, 유력 인사의 동상을 세우며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또한 조선에서 일본과 유사한 풍경을 찾거나 이를 재현해서 서로 공유하는 것도 일본인들의 향수를 달래는 동시에, 상호 친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 국경 지방의 산이 일본의 후지산(富士山)과 유사하다고 하여 '간도의 후지산'이라고 부르거나, 전주 일대에 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고서 이를 일본 제일의 벚꽃 명소로 꼽히는 나라(奈良)의 '요시노야마(吉野山)'로 명명한 것 등이 그 예이다. 일본인들에게 조선은 한국인들의 삶의 터전이 아닌 그들의 터전, 일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