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특수훈련반(미 OSS)의 훈련을 마치고 공작임무를 수행하러 적 후방을 향하여 떠나던날 대장 이범석장군을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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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사회상 사진아카이브

1920년대 사회상 - 관공서와 신사

왕공족과 귀족

한국인의 생활

여달조합

조선 내의 일본인

조선 내의 서양인

유적 발굴 및 정비

침략전쟁의 기념물

조선 내의 서양인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서양인들은 조선총독부의 회유의 대상이었다. 1919년 3.1 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교회와 신도, 선교사가 피해를 입었고, 이들이 자신들이 목격한 조선의 참상을 본국에 알렸기 때문에, 서구 열강의 여론은 일본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후발 제국주의로서 서구 열강의 협조를 필요로 했던 일본으로서는 선교사를 회유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는 선교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고, 미션계 사립학교의 성서 교육을 공인하여 외국인 선교사들의 호감을 얻고, 종교단체가 소유한 부동산을 내국법인으로 허가해 줌으로써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었다. 이러한 우대 조치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하는 '제국'이면서도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에 인종차별 당하기도 하는 후발국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서구 열강도 일본의 우대 조치를 대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선교사들에게 조선의 정치 문제에 관여하지 말도록 하면서 조선에서 세력을 확장해갔다.


총독부와의 교류 베네딕트 수도원

총독부와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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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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