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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 5적

제목 을사 5적
한자명 乙巳五賊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유의어 을사오적(乙巳五賊)
별칭•이칭

[정의]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을사늑약 체결에 동의한 다섯 명의 내각 대신.

[내용]

을사늑약의 체결에 동의한 다섯 명의 내각 대신은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이다. 이들은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와의 면담에서 조약문의 문구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했고, 이토는 문구 수정안을 제출한 이상 조약에 찬성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다음날 외부대신의 직인이 찍힌 조약 체결 가결안이 회람되었고 여기에 5명의 대신이 기명으로 ‘가(可)’를 썼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들은 매국적(賣國賊)으로 지칭되었고, 이들의 단죄를 요청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이 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에서도 이들은 왕과 인민을 속이고 나라를 판 매국적으로 호명되었다. 1905년 12월 이 5명은 연명(連名)으로 상소를 올려 외부대신의 직인이 찍힌 문서가 회람되었을 때 왕이 이 조약에 동의한 것으로 알았다고 항변했고, 대한제국 국호와 인민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1906년 3월 12일 공립신문에 「난망자오적(難忘者五賊)」이란 기사가 실린 이후 ‘5적’으로 통칭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근택, 권중현, 이완용 등이 습격을 받기도 했다.

▶ 관련자료

ㆍ5적(五賊)
ㆍ을사 5적(乙巳五賊)
ㆍ을사오적(乙巳五賊)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