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책 이야기
제왕운기(帝王韻紀)

40여 년 동안 계속된 대몽항쟁

원의 압박으로 행해진 두 번의 일본 원정 나라가 위태로울 정도로 피폐해진 고려

그러나 국정을 장악한 세력은 부패했고 임금은 사냥과 유흥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았다.

고금의 전적이 많고 끝이 없으며 또한 앞뒤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러니 진실로 요점만 간추려 시로 읊을 수만 있으면 열람하기에 편하지 않겠는가 …

其善可爲法 선한 것은 법이 되고

惡可爲誡者 악한 것은 경계가 되게 하고자

제왕(帝王)이 갖추어야 할 덕목(德目)을 운율(韻律)이 있는 시(詩)로 기록한 글

제왕운기

충렬왕의 실정을 비판한 상소로 파직

삼척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 이승휴

하지만 나라에 대한 걱정까지 접어둘 순 없었다.

왕을 위해 다시 글을 썼다.

7언 절구와 5언 절구의 시로 엮은 역사서

제왕운기

중국 왕조의 흥망성쇠와 단군 이래 고려까지 역사를 정리

이는 중국과 우리 역사를 나란히 기술해 대등한 나라임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요동에 하나의 별천지가 있으니 지역은 중국과 구별되어 나뉘었네

큰 파도 넓은 바다 삼면을 둘렀고 북쪽에 있는 대륙과 끈처럼 이어져 있네

가운데 사방 천리 여기가 조선이니 강산의 뛰어난 모습은 천하에 이름이 높네

농사지어 먹고살고 우물 파서 물 마시며 예의 바른 국가여서 중국인들도 소중화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개국 시조는 단군이었다.

처음 누가 나라를 열고 비바람을 다스렸는가 석제의 손자 이름은 단군일세

우리 민족은 하늘의 신 석제의 후손이었다.

단군신화가 실려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 일연의 삼국유사

환웅과 곰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

유학자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실린 다른 내용의 단군신화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인간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게 했으니 이를 단군이라고 한다.

환웅의 손녀와 단수신이 혼인하여 단군 탄생 우리 민족이 하느님의 후손임을 강조했던 제왕운기

단군이 나라를 세운 시기도 중국 요임금의 건국과 같은 해

특히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인정 최초로 한국 역사에 포함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강조한 대서사시 제왕운기

난세의 희망이었던 역사서를 자신을 파직시켰던 충렬왕에게 바치며 그가 남긴 말

“신이 제왕운기를 편수하여 두 권으로 나누고 깨끗이 써서 바치는 것은 … 개똥벌레 같은 희미한 빛이나마 해와 달의 밝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함이니 …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스러운 지혜를 너그럽게 미루시어 사람 때문에 글까지 버리지 말아 주소서”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