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토우와 토용

흙으로 완성한 고대인의 삶 토우, 토용

다시 세상에 나온 토우 - 1970년대

1970년대 경제발전과 맞물린 개발공사가 전국에서 시행
경주시내 대형급 무덤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토우

주로 굽다리접시의 뚜껑이나, 목항아리의 목 부분에 붙여지는 대략 5㎝ 내외의 크기
장식성은 물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라인들의 정신세계를 표현
토우의 형상들은 당시 신라인들의 생김새나 옷차림, 일상적인 생활 모습과 믿음을 표현
신라가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는 시기인 6세기경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짐
돌무지덧널무덤이 아닌 작은 돌덧널무덤에서 주로 출토

토기 특징
토우장식항아리
경주 계림로 30호
국보 제195호
-1973년 발굴
- 항아리 몸통의 어깨부분과 목 부분에 남녀 성교모습 배부른 임산부가 가야금을 타는 모습
- 가야금 밑으로 기어가는 뱀,
-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의 모습 외에 개구리, 불가사리, 새, 거북이 등 여러 동물 장식
- 높이 340cm
토우장식항아리
경주 노서동 11호
국보 제195호
- 1973년 발굴
- 가마에서 구워질 때 약간 뒤틀렸지만 전체적인 형태를 알 수 있는 완전한 개체 중 하나
- 항아리 목 부분에 왼손으로 긴 막대기를 쥐고 오른손으로 과장된 성기를 쥐고 서 있는 남자
- 남자의 모습은 찢어진 두 눈과 큰 코, 고깔 같은 모자를 쓴 것처럼 묘사
-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이 대칭적으로 붙어 있다.
- 높이 401cm
황남대총 남분 출토
남자, 여자 토우
- 1973년 발굴
- 돌무지덧널무덤 내부가 아닌 봉토에서 발견
- 무덤을 만들어 봉토를 쌓으면서 토우가 부착된 토기편이나 여자토우를 함께 묻어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 높이 67cm
토우장식굽다리접시와 뚜껑
경주 월성로 11-1호
- 1985년
- 토우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말,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정도
- 이 돌덧널무덤에서는 뿔잔 한 점도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에 월성로 고분중에서 다른 성격의 피장자가 주인공일 가능성이 크다.
- 높이 81cm (왼쪽뚜껑)
동물모양 토우가 달린 그릇받침
부산 복천동 11호·32호분
- 출토시기 미상
〈부산복천동 11호〉
- 거북이가 기어가는 듯 그릇받침에 붙어 있는 모습
- 출토시기 미상
〈복천동32호분〉
- 멧돼지와 개, 말 모양의 토우
- 높이 57cm
울산 운화리 30호 출토 토우 - 출토시기 미상
- 남자 성기를 강조한 남자토우나 피리와 대금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 말로 추정되는 동물 등에 격자모양의 침선, 그 외에 개와 유사한 동물 토우 발견
- 30호 돌방무덤은 5세기 중후반대에 해당하는 무덤
- 경주 황남동 돌덧널무덤에서 출토된 토우의 제작기법과 비교해보면 몸통과 다리 등의 접합이나 마무리 등이 미흡
- 높이 97cm
배모양토기
경주 금령총
- 출토시기 미상
- 상형 토기에 부착된 토우
- 성기를 강조한 뱃사공 모양
- 높이 98cm

토용

신라 통일 이후 토기에 부착된 토우의 성격이 독립적인 개체로 변모한 것이 토용
완벽한 복식과 형태를 갖춘 남자와 여자, 서역인, 무사, 시녀 등의 인물과 소와 같은 동물도 함께 확인
이 시기의 돌방무덤에서는 토용으로 대체
다양한 생활유적이나 왕경, 절터에서 5세기 중후반~6세기에 유행했던 토우가 소량이나마 확인
화곡리 생산유적에서는 토우와 토용이 함께 발견
토용은 당시 통일신라 옷차림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신라 통일 이후 순장풍습이 사라지면서 사람을 대신해 토용을 무덤에 부장, 종류가 무척 다양
토용 제작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며 진시황제의 병마용이 가장 유명
한나라 이후 당나라의 삼채도용으로 이어짐

토용 특징
여인상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
- 1986년 발굴
- 체격이 큰 여인상과 체격이 작은 여인상이 함께 출토되었다.
- 매우 사실적이고 세련된 솜씨로 만들어졌는데, 옷은 발까지 덮은 통옷이고, 손은 양쪽 소매 속에 넣어 팔짱을 끼고 있다.
- 신라시대의 신분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172cm (큰 여인상)
문관상
경주 용강동고분
- 1986년 발굴
-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표현되어 있는 서역인 모습의 토제 인물상
- 두 손은 예를 갖춰 홀을 들고 있고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린 옷 주름이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다.
- 당시 통일신라가 당나라를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을 포함한 서역과 교류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높이 7cm
12지신상
경주 용강동 고분
- 1986년 발굴
- 범, 토끼, 말, 양, 개 등의 땅을 지키는 12신장으로, 무덤 속에 배치한 소형의 청동 12지신상은 그 유례가 없는 유일한 것이다.
- 몸통은 사람 모양이고 얼굴은 짐승 모습인데 웃통은 벗었고 아랫도리는 허리띠로 동여맨 바지가 겹으로 단을 이루며 주름 잡혀 있다.
- 청동기 시대로부터 축적된 청동 주조 기술의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 높이 7cm~84cm

이형(상형)토기

상형토기란 본떠 만드는 기술과 관념이 발전하여 물건 자체를 그대로 표현한 토기
배·집·신발과 같은 물건이나 건축물, 새⋅말 외에 서수형 동물 등을 표현
주로 속이 비어 있으며 액체를 부어 따를 수 있는 기능적 역할도 함께 있는 것으로 파악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을 채택

토기 특징
배모양토기
경주 금령총
- 1924년
- 상형 토기에 부착된 토우
- 성기를 강조한 뱃사공 모양
- 영혼을 저승으로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의식용 토기로 생각된다.
- 높이 98cm
짚신 모양 토기
부산 복천동 53호 무덤
- 출토시기 미상
- 굽다리 위에 짚신을 만들어 올리고 그 짚신 안에 굽이 달린 잔을 붙인 한 쌍의 토기
- 죽은 이의 영혼을 이승으로부터 저승으로 옮겨가는 의미로 제작된 것이다.
- 160cm
집모양토기
출토지 미상
- 출토시기 미상
- 네 기둥을 세우고 둥근 지붕을 씌웠으며 밑바닥이 땅에서 떨어진 모양으로 만듦
- 지붕위에는 굴뚝을 뜻하는 귀때부분(注入口)이 있고, 한쪽 지붕 모퉁이에는 주출구(注出口)가 있어 용기로 사용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대체로 부장용이나 장례의식에 쓰였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 유물을 통해 고대가옥구조를 엿볼 수 있다.
- 높이 168cm

다른 시대의 토우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빠른 토우는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통영 욕지도 유적에서 출토된 돼지모양의 토우가 있다.
삼국 시대엔 제의와 관련한 개별적 토우가 김해 봉황동유적의 저습지에서 다량으로 발굴됐다.

토우로 본 신라인들의 삶

신라인들은 토우에 그들의 일상을 빚어 올렸다.
남녀 간의 사랑, 여인의 고통스런 출산과정, 시신 앞에서 슬퍼하는 여인을 통해 죽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당시의 옷차림을 보여주거나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 사냥하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했다.

남자 토우
앉아있는 자세와 서 있는 자세
코와 귀를 강조
여자 토우
가슴을 강조하거나 치마를 입혔다.
눈, 코, 입이 있지만, 귀를 표현한 여자는 없다.

토우 속 동물들

새, 육지동물, 해양 동물, 용과 같은 상상 속 동물 등 다양한 동물모양의 토우가 존재

삶의 희노애락
이승과 저승의 연결고리
흙에 숨결을 불어 넣어
고대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표현한 토우와 토용
토우와 토용은 고대인의 영속적인 관념의 세계의 표현이다.

-------------------------------------

원고 자문 : 김현희
시나리오 구성 : 안현진, 김민상
성우 : 오수경
MC : 주혜빈, 황바울
삽화 : 이광일
자료 협조 :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청, 한성백제박물관, E-뮤지엄
연출 : 김형우, 이혁로, 이연식
기획 제작 : 아리랑TV미디어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