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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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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예로부터 호랑이 그림은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하여 인기였는데요. 여기 호랑이를 그린 두 개의 그림이 있습니다. 둘 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그림인데요. 무엇이 다를까요? 호랑이가 나쁜 기운을 막아주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자유분방한 화풍의 그림이 바로 ‘민화’입니다. 개인의 소망을 익살스럽게 담아낸 민화가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다는데요. 조선 후기 그림의 대중화를 이끈 민화의 매력을 알아볼까요.

조선 후기에 민화가 유행했던 이유?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그림’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린 진경산수화나 생활하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도 있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은 민화를 빼놓을 수 없죠. 신흥 부유층이 등장하던 조선 후기, 집안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풍조가 유행하면서 민화를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데요.

민화를 그리는 민간의 화가들이 궁중 회화를 보고 모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이 그렸던 궁중 회화와 달리 민화는 대부분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민간 화공의 작품이었는데요.

기술적으로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형식과 틀에서 벗어난 개성 넘치는 그림이 많았습니다. 또 화공에 따라 그림 실력이 천차만별이었다고 하네요. 디지털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려야 할 때는 어떻게 했을까요? 민화를 그리는 과정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작가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다르지만, 우선 제일 먼저 밑그림을 그립니다. 그다음 완성한 밑그림 위에 먹이나 물감의 번짐을 막기 위해 반수를 합니다. 색조에 변화를 주는 바림 작업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윤곽선을 다시 그려주면 완성입니다.

그림의 기본이 되는 밑그림만 있으면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릴 수 있는데요. 민화의 유행으로 상류층만 즐길 수 있었던 그림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경제가) 좀 부강해진 거죠. ‘나도 내 집에도 그림을 한 장 걸어야겠다’ 한다면 화원들이나 그때 유명한 작가 화가들의 그림을 가져다 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조금 더 수준이 낮은 그리고 조금 값이 싼 그런 그림들을 그리게 되는데 그게 주로 민화의 형식이죠” 엄재권 명예회장 / 한국민화협회

개인의 소망을 담아 인기였던 민화?

조선시대 민화로 유명했던 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과연 어디일까요? 조선시대 미술의 산실이었던 도화서. 도화서는 도성 내 제1의 다리로 불렸던 광통교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19세기 말, 광통교 주변의 지전, 병풍전을 중심으로 민화의 유통이 활발했다고 합니다.

‘종로에 복제화와 종이를 파는 거리에서 몇 전만 주면, 용이나 호랑이, 날개 돋친 말, 옛 전사들의 환상적인 형상들을 구할 수 있는데, 이것들을 문짝에 붙여 놓으면 집에서 악귀를 내쫓는다고 한다. ··· 한국의 어느 집에나 같은 그림들이 걸려 있다.’ - 카를로 로제티 『꼬레아 에 꼬레아니(Corea e Coreani)』, 1904

민화가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라 개인의 소망을 담은 그림이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민화마다 가지고 있는 의미가 달랐다고 합니다. 연꽃을 담은 연화도는 어떤 소망을 담고 있을까요. 하나의 뿌리에서 피는 두 송이의 연꽃과 잎사귀는 부부가 화목하게 살면서 함께 늙어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은 힘차게 뛰어오르는 잉어를 그린 그림인데요. 주로 과거를 앞둔 선비에게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힘차게 뛰어올라 용이 된다’는 뜻의 어변성룡도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글자와 그림이 어우러진 문자도인데요. 이 문자도의 여덟 글자는 효와 윤리를 나타냅니다. 특히 지역마다 다른 문자도의 특색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는데요. 책장을 그대로 옮겨놓아 책거리 혹은 책가도로 불리는 이 그림. 책에 관한 남다른 열정으로,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가 아닌 책거리를 가져다 놓은 왕도 있었다는데요. 바로 정조입니다.

“정조께서 화공에 명하셔서 책거리 그림을 그리게 하여 자리 뒤에 붙여 두시었다.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 나는 평소 서적을 읽는 것을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삼았지만, 일이 많고 분주해서 책을 읽고 외울 여가가 없으면 ... 이 책가도 그림을 보고 마음으로 즐기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 남공철 『금릉집』

누군가에게는 재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누군가에게는 출세를 소망하는 용도로 책거리가 그려졌는데요. 책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숨겨진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책거리의 인기. 해외에서 전시가 이어질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민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행복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서 집안을 장식하고 향유할 수 있고 민화를 통해서 일반 백성들이 자신의 꿈과 사랑과 행복을 염원하는 그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병모 교수 /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조선 후기,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그림의 대중화를 이끈 민화. 개인의 소망을 담은 개성 넘치는 민화를 통해 옛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궁중에서 사용되는 그림을 궁중 회화, 민간에서 장식으로 쓰인 그림을 민화라고 한다.
2. 민화는 단순한 장식용이 아닌 개인의 소망을 담은 그림이다.
3. 책을 좋아하는 정조가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가져다 놓은 그림은 책거리다.

해설

민화란 민간의 화사가 민간의 수요에 맞추어 그린 그림을 말하며, 특히 신흥 부유층이 새로운 경제 주체로 대두된 조선후기에서 근대기에 활발하게 제작되고 대중적으로 유통되었던 그림을 통칭한다. 민화의 등장은 그림이 상류층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누구나 지전(紙廛) 혹은 서화사(書畵肆) 등의 매장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음을 전제한다. 민화는 화원이 그린 궁중회화 혹은 유명 화가의 명작들과는 구분되며 대개 정식으로 훈련받지 않은 화가가 그린 것을 말하지만 전문화가의 솜씨를 방불케 하는 그림도 다수 포함한다. 따라서 민화의 작품 종류와 수준, 가격은 그 범주가 매우 광범위하다.

민화는 그림을 거래하는 유통구조의 변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18세기 말 한양의 번화가인 종로와 광통교 일대에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그림가게가 등장했던 것이다. 광통교 그림 가게에서 팔리던 그림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19세기 중반의『한양가』(한산거사, 1848)라는 가사집에 보면 백자도, 요지연도, 곽분양행락도, 경직도, 소상팔경도 등의 병풍 그림과 다락벽에 붙이는 계견사호 그림, 장자문에 붙이는 어약용문도와 해학반도도 등 여러 그림 주제가 언급되었다. 이 외에도 제갈량의 남양초당과 유비의 삼고초려, 이태백의 그림이 있었고, 벽사의 용도로 대문에 붙일 신장상들이 있었다. 그림의 주제별 종류와 이들이 집 안의 어디에 장식될 용도인지 상세하게 설명되었다.

민화의 대표적 화목으로 알려진 책거리는 사실 궁중에서 시작되었다. 학문과 책을 지극히 좋아했던 정조가 창덕궁 선정전의 어좌 뒤에 책거리를 펼쳐놓았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정전(正殿)에 놓였던 오봉병(五峰屛)이며 궁중 행사에 사용되었던 화려한 모란병(牧丹屛), 이들 그림이 궁궐의 담을 넘어 민가에 놓이게 되고, 이를 베끼고 모방한 그림이 인기리에 팔렸다. 조선후기~근대기 민간의 그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궁중회화는 규모나 비용, 기량이 다른 다양한 수준의 작품을 파생시켰다. 민화는 상류층 문화의 저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간략화되고 변형·왜곡되는 과정에서 엄격한 규범을 벗어난 자유롭고 독창적인 양식의 민화로 전개되었다.

신년을 송축하기 위해 임금과 신하, 그리고 민간에서 주고받았던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담은 그림을 ‘세화(歲畵)’라고 한다. 신장(神將), 용호(龍虎), 계견사호(鷄犬獅虎), 호작(虎鵲), 승학선인(乘鶴仙人) 등의 그림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민화에서 주요 비중을 차지한다. 계견사호에서 닭이 머리에 달고 있는 볏은 관을 쓴 모습과 닮았고 따라서 닭은 출세를 의미한다. 또 새벽이면 어김없이 때를 맞춰 우는 동물이자 첫새벽을 여는 상서로운 존재로 인식되어 많이 그려졌다. 개, 사자, 호랑이 또한 새해에 나쁜 기운을 쫓고 복을 빌면서 대문이나 벽장에 붙여졌다. 호작, 즉 호랑이와 까치 그림 또한 새해에 좋은 소식과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소망을 담았다.

장수와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수복문자도〉 또한 많이 제작되고 소비되었는데, 우리 선조들이 간절하게 소망했던 바가 무엇이었던지를 말해준다. 〈십장생도〉는 장수를 기원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그 기원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시대 궁중 행사에서 사용되었던 그림으로 민간에 널리 확산되었다. 〈요지연도〉와 〈해학반도도〉는 불로장생의 신선세계를 나타낸 환상적 이미지로써 역시 장수와 안락을 희구한 궁중회화에서 비롯되어 민간에 영향을 미쳤다. 〈요지연도〉는 신선계를 주재하는 서왕모(西王母)가 곤륜산(崑崙山)의 연못인 요지(瑤池)에서 주나라 목왕(穆王)와 여러 신선들을 초대해 연회를 베푼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곽분양행락도>는 당 현종 때 실존했던 곽자의(郭子儀)라는 장군의 부귀하고 영화로운 삶을 그린 그림이며, 〈백동자도>는 그의 많은 자손들을 그린 그림이다. 다양한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이런 그림은 다남(多男)의 기원을 담은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라에 충성하라. 유교적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를 마음에 새기게 하는 그림인 효제문자도가 있다. 그 시작은 중국에서 유래했다할지라도 글자의 필획 안에 고사를 그리는 데에서 점차 그림이 필획을 대신하고, 나아가 간략화, 도식화되고 추상화 되어가는 전개 과정에서 지극히 한국적인 미의식이 표출되었다.

또한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본받을 만한 행적을 주제로 한 고사인물도 또한 교화의 효능을 띠며 민간 수요로 꾸준히 제작되고 향유되었다. 특히 인기있었던 고사는 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강태공의 이야기이다. 위수 가에서 낚시질하던 그는 여든살이 되어서야 등용되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왕조의 교체를 이루었다. 강태공은 현자를 등용하는 군왕의 혜안과 포용력,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연마하는 신하의 미덕을 교훈으로 내세웠다.

기행의 여정과 풍류를 나타내는 수많은 금강산도가 그려졌고, 관동팔경도와 소상팔경도 등의 산수화 또한 꾸준히 인기가 높았다. 부부의 좋은 금슬과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는 화조도, 화훼도, 어해도(魚蟹圖), 시적 정취를 담은 시의도(詩意圖) 등이 또한 다채롭게 펼쳐졌다.

민화는 왕실과 상류층의 고급 미술에 비해 격식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한국적 미감을 유감없이 드러내었고, 파격과 해학의 묘를 발휘하였다. 또한 중인층 및 서민층이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통해 예술 구매자로서 대두되었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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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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