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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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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재질도 모양도 각각인 포장 용기, 식재료와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여기에 식수를 위한 정수기까지, 오늘날의 주방에는 갖가지 식재료와 음식을 보관하기 위한 제품들이 즐비합니다.
그렇다면 포장 용기도 냉장고도 정수기도 없던 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어디에 보관했을까요? 물은 또 어디에 담았을까요?
바로 질그릇이 모든 역할을 해냈습니다. 지금은 장독대의 장 항아리 정도로 사용되지만, 과거에는 질그릇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활용범위가 넓었습니다. 각종 발효식품을 담아 저장했던 항아리와 병부터 화로, 시루, 동이까지 다양한 용도의 질그릇이 존재했던 것이죠.

질그릇의 원리

‘고려의 과일 중에 밤은 복숭아만큼 크며 맛이 달고 좋다. 옛 기록에 밤이 여름에도 있다 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질그릇에 담아서 흙 속에 묻으면 해를 넘겨도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권23

질그릇은 토기 또는 도기라고도 불리는데, 질흙을 사용해 1,200도 미만에서 구운 그릇을 말합니다. 질그릇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원료로 유약을 바르지 않고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한 생활용품이었습니다. 또한 질그릇에 곡식이나 식재료를 보관하면 상당 기간 썩히지 않고 재료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1,200도의 고온에서 구워지는 과정 중에 질그릇에 미세한 공기구멍이 형성되기 때문인데요, 공기 정도의 입자만 통과되는 이 구멍을 통해 질그릇에 통기성이 높아지고, 덕분에 식재료를 신선도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김치냉장고도 질그릇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했다고 합니다. 겨울철 땅속 온도는 영상 1°에서 0° 사이로 유지되는데 여기에 김장독을 묻으면 땅 속과 동일한 온도로 김장독이 냉각되어 김치를 숙성하고 보관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김치냉장고는 이러한 원리를 차용해 저장고 전체를 0°C로 유지시켜 우리에게 익숙한 김치 맛을 만들어 내는 겁니다.

고려시대 질그릇 이야기

‘대체로 배가 큰 바다를 지나려고 하면 반드시 물독을 마련하여 샘물을 많이 준비해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준비한다. 큰 바다 가운데서는 바람에 대한 걱정은 없으나 물이 있고 없고에 따라 생사가 판가름난다.’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 권33

긴 항해 기간, 선원들의 선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실 물을 충분히 보관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 선박 출수 유물 중에 높이가 1미터 가까이 되는 대형 질그릇이 여러 점 발견되었는데 과거 선원들이 마실 식수와 생활용수를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던 질그릇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곡류를 보관하는 항아리와 오늘날의 찜기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시루와 각종 음식을 담는 접시도 질그릇이 사용되었습니다.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잇달아 발견된 침몰선들, 마도선이라 불리는 이 선박들은 세금으로 낼 특산물을 싣고 남도에서 수도로 향하다 난파된 13세기 고려시대 세곡선이었습니다. 이 선박들에서 출수된 유물들은 선원들의 생활 물품 외에도 그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시대 질그릇의 쓰임을 밝히는데 주요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일종의 선박 수화물표인 목간과 죽찰, 마도선 인양 과정에서 출수된 이 유물들에는 선박의 출발지와 도착지, 받는 이의 정보는 물론이고 ‘홍합 젓갈 다섯 항아리’, ‘게 젓갈 한 항아리’, ‘콩 한 섬’ 등과 같이 선적 물품의 종류와 양 등의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는데요, 목간 근처에서 함께 인양된 다양한 질그릇에서 조개 껍질, 게 껍질, 볍씨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질그릇이 선적 물품을 담는 배송용 용기 역할을 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나아가 배송용 질그릇이 나름의 용량 체계를 갖추고 규격화되어 있다는 점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질그릇 이야기

‘양쪽에 귀를 만들어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며 한번 넘어지면 바로 깨져 무익해지지만 날마다 쓰는 살림살이로 가장 요긴하다.’ - 서유구, 『임원경제지』 「섬용지」, 도부편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질그릇은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린 풍속화 속에도 질그릇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여러분들은 그림 속 곳곳에 그려진 질그릇을 발견하셨나요? 붓을 만드는 필공이들 앞에 놓인 난방 화로, 옷감을 염색하는 청물이 담긴 큰 독, 우물가에 이고 가는 물항아리 모두 흙으로 빚어진 질그릇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실에서도 질그릇을 사용했을까요? 조선시대 궁중 생활을 담은 그림 속에도 음식을 준비하는 숙수들의 모습과 함께 대형 옹기와 같은 질그릇이 그려져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각종 연희와 의례로 화려한 음식상을 차리는 일이 많았던 조선의 왕실에서 식수와 식재료 보관을 위한 질그릇 수급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술, 식초, 장 등을 관리하고 왕실에 각종 잔치를 주관하는 여러 관청에서는 104명의 옹기 장인을 두고 많은 양의 질그릇을 직접 만들어 썼다고 합니다.

왕실의 장고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묘사한 〈동궐도〉에서 자세히 확인됩니다. 동궐도 속 장고는 모두 네 곳으로 창경궁 통명전터 남쪽과 서쪽, 자경전 동쪽, 창덕궁 선정전 서북쪽이며 한 눈에 봐도 장고의 규모가 꽤나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복궁에도 함화당과 집경당 동서쪽 두 곳에 장고가 있었습니다. 2005년 발굴 조사에 따라 현재 경복궁 서쪽 공간에 당시 모습을 재현해 장고를 조성했는데요, 장고에는 전국에서 수집한 대형 항아리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이 물품들을 보면 마치 민족사를 읽는 것과도 같고 직접 옛날 사람들과 사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조선도자명고』 서문 중

시대와 신분을 넘어 사용됐던 질그릇의 역사는 무려 8천 년 이상을 거슬러 신석기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인류는 불에 구운 점토가 단단해지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했고 흙을 빚어 질그릇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질그릇은 민중의 생활용품에서 망자들의 부장품까지 인간의 모든 일상을 위해 빚어지고 쓰여졌습니다. 기교 없이 투박하지만 제 역할을 다하며 그 무엇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던 질그릇. 그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 안에 민족의 역사와 사람들의 일상이 담겼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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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국사편찬위원회
제작 : 스튜디오 바카
자문 : 한혜선
검수 : 김태은, 명재림, 서명원
수어통역 : 최황순
촬영·자료 협조: 고려대학교박물관, 국립국악원,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채널,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 태안해양유물전시관, KBS바다

해설

2008~2010년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고려시대 침몰선 3척에 대한 수중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침몰선은 마도 1, 2, 3호선으로 명명되었고, 모두 13세기대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전라도 일대에서 거둬들인 세곡과 특산물, 청자 등 다양한 물품을 싣고 최종목적지였던 당시의 수도로 올라오는 도중에 빠진 것이다. 이 3척의 침몰선에서 인양된 유물 중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은 질그릇(도기)(陶器)로 된 항아리였다. 같이 인양된 화물표의 일종인 목간자료와 질그릇(도기)항아리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을 분석한 결과 남도산 특산물이었던 각종 젓갈과 생선, 생선기름 등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어떤 식재료를 이용하고 조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를 마도선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도선 자료에서 확인되듯이 각종 식재료를 담았던 항아리는 주로 질그릇(도기)으로 만들었다. 질그릇(도기)이란 도토(陶土) 또는 질흙을 사용하여 1,200℃ 미만에서 구운 그릇을 말한다. 문헌자료에 등장하는 와기(瓦器)를 비롯해 대형 항아리 중심의 다갈색 유약을 입혀 구운 옹기(甕器)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질그릇(도기)은 처음 우리나라에서 자기(磁器)를 만들었던 고려시대 이후 청자, 분청사기, 백자를 일컫는 자기와 함께 완전한 도자기(陶磁器) 문화를 구성한 중요한 한 축이었다. 자기는 잘 정제된 태토에 유약을 발라 구었으며 대체로 크기가 작아 음식을 직접 담아 먹는 용도, 최종적으로 상에 올라가는 그릇이었다. 그러나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마지막 상 위에 올라가기까지 식재료를 저장하고 조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 많이 활용된 것이 바로 질그릇(도기)이였던 것이다. 특히 음식 저장에 질그릇(도기)은 빼놓을 수 없는 물품이었다.

고려시대 이후 음식 저장에 질그릇(도기)이 활용되었던 사례는 각종 문헌자료와 여러 유적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경우 앞에서도 언급한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3척의 침몰선 자료가 많은 사실을 알려준다. 마도 1호선은 1207~1208년 사이에 전라남도 장흥과 영암에서 출발하였고 2호선은 1213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발하여 당시 수도인 개경으로 가던 중이었고,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 사이 전라남도 여수를 포함한 남해안에서 출발하여 당시 임시수도였던 강화도로 가던 중이었다. 이 배에 실린 질그릇(도기)항아리는 고등어젓[古道醢], 게젓[蟹醢], 전복젓[生鮑醢], 홍합젓[䗊醢], 알젓[卵醢] 등을 저장하였다. 또한 질그릇(도기)항아리에는 전복[生鮑]이나 물고기기름[魚油]을 담기도 했다. 다양한 종류의 젓갈 중 알젓은 당시 귀한 식품 가운데 하나로, 고려말 조선초 사람인 권근(權近)도 자신에게 알젓을 보내준 사람에게 사례하기 위한 시를 쓰기도 하였을 만큼 별미였다. 조선시대 기록에서도 알젓은 귀한 식품 중 하나로 왕실에 바치는 진상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명나라에서 조선에 요구하는 품목이었다.

한편 마도선에서 인양된 질그릇(도기)항아리는 크기와 형태에 따라 몇 개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는데, 이것을 목간자료 중 질그릇(도기)항아리에 담았던 젓갈과 연결시켜 보면 당시 1~5두까지 각 용량을 반영한 질그릇(도기)항아리가 사용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마도 1호선에서 확인된 목간 중 죽산현에서 개경에 있는 교위 윤방준 댁에 게젓 한 항아리를 올린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데(0913-I13-죽찰), 여기에서는 한 항아리에 4두가 들어간다고 하였다[竹山縣在京校尉尹邦俊宅上 蟹醢壹缸入四斗]. 고려시대 도량형제도에 근거하면 당시 4두는 약 13.6L로, 이 정도 양이 들어가는 질그릇(도기)항아리가 실제로 같은 배에서 여러점 인양되었다. 또한 마도 3호선에서는 홍합젓을 3두용 항아리에 담았는데[䗊醢一缸入三斗玄礼], 3두인 약 10.2L를 담을 수 있는 질그릇(도기)항아리가 30점 정도 인양되어 용량에 따라 질그릇(도기) 항아리의 크기가 정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고려시대 침몰선에서 발견된 젓갈과 생선을 담는 용도로 활용된 작은 크기의 질그릇(도기) 항아리 외에도 높이가 1m에 육박하는 대형의 질그릇(도기)을 식재료 보관용으로 사용한 사례를 문헌자료와 유적발굴조사에서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중국 송나라의 사신이었던 서긍(徐兢)이 고려에 와서 본 것을 기록한 보고서의 일종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 과일 중에는 밤의 크기가 복숭아 만한 것이 있으며 맛이 달고 좋다. 옛날 기록에 여름에도 잠시 밤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잘 익은 밤을 질그릇(도기)에 담아서 흙 속에 묻어두면 해가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宣和奉使高麗圖經』 卷23, 雜俗2 土産, “其果實 栗大如桃 甘美可愛 舊記謂 夏月亦有之 嘗問其故 乃盛以陶器埋土中 故經歲不損.”)

이 기록에 따르면 질그릇(도기)은 제철 과일을 장기간 보관할 때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냉장고가 따로 없던 시절에 대형 질그릇(도기) 항아리는 그에 준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고려시대 질그릇(도기)은 자기와 달리 크고 얇게 만들 수 있었고, 원료 역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유약을 시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제 기능을 다하기 때문에 자기에 비해 공정이 단순한 것도 장점이다. 이러한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질그릇(도기)은 고려시대에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고려사람들은 식재료 보관용 질그릇(도기) 항아리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고려시대 선종사찰을 대표하는 여주 고달사지에서는 승려들의 식사, 공양, 조리 또는 관련된 부속시설인 고원(庫院) 영역으로 추정된 가-3건물지와 가-4건물지에서 다수의 질그릇(도기) 항아리가 확인되었다. 가-3건물지에서는 초석 사이에 동서 2열로 수혈(竪穴)이 있었으며, 일부 수혈 안에 대형 항아리의 저부가 묻혀 있었다. 전체가 남아 있는 항아리들은 높이가 거의 80cm에 달한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 사찰과 건물지에서 식재료 저장용 질그릇(도기)은 대부분 동체의 전체 또는 일부를 땅에 묻어서 사용하였다. 대형 질그릇(도기) 항아리의 대부분이 저부가 좁은 반면에 어깨가 상당히 넓은 형태를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조장치가 없다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즉 옆으로 넘어졌을 경우 손상될 위험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러한 기형상의 약점을 보완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릇의 일부 혹은 전체를 땅에 묻어 사용하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형태상의 약점을 보완하고 파손의 위험을 줄이면서 저장용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동체의 일부 혹은 전체를 땅에 묻어서 사용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는 대형이면서 동체 두께가 얇아 부딪힐 때 깨지기 쉬운 질그릇(도기)의 단점을 보강하는 한편 음식을 보관했을 때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습기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자기인 분청사기 및 백자와 함께 대형의 저장용 질그릇(도기) 항아리는 왕실에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꼭 필요한 물품 중 하나였다. 16세기에 당시 수도였던 한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기록한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오는 다음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도 질그릇(도기)은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사람이 사용하는 것 중에 질그릇(도기)이 가장 긴요하다. 지금의 마포와 노량진 등은 모두 진흙 굽는 것을 업으로 삼으니, 이는 모두 질그릇·항아리·독의 종류이다.(성현, 『용재총화』 권10)

한편 왕실에서도 식품 저장용으로 질그릇(도기)을 많이 사용했는데, 그 내용은 질그릇(도기)을 제작한 장인인 옹장((甕匠)을 살펴보면 그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각종 문헌기록에 의하면 왕실 및 관사(官司)에서 사용하는 질그릇(도기)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관사에 직접 옹장을 두고 제작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나온다. 조선전기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많은 장인들이 소속되어 있는 공조(工曹)뿐만 아니라 호조(戶曹)에 소속된 음식 재료를 담당하는 여러 관사들에 각각 옹장이 소속되어 있었다. 옹장이 소속된 관사들은 대부분 궁중에서 사용하는 술, 장, 꿀, 기름 등을 담당하는 부서들로, 이들 식재료의 저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질그릇(도기)을 많이 사용했던 조직이다. 또한 각종 의례를 책임지는 예조(禮曹) 소속의 봉상시, 예빈시, 소격서 등에도 적지 않은 옹장이 소속되어 있었다. 모두 14개 관사에 104명의 옹장이 각각 소속되어 있었다. 여러 기록을 통해 궁중과 여러 관사에 적지 않은 질그릇(도기)이 필요하였고 이것은 주로 장·술·기름·꿀·초 등 액체로 된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왕실에서 많은 질그릇(도기)이 사용되었던 사실은 조선시대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창덕궁과 창경궁을 자세히 묘사한 〈동궐도(東闕圖)〉를 보면, 궁궐 곳곳에 수많은 질그릇(도기)이 있는 염고(鹽庫)와 장고(醬庫)가 있다. 이곳들은 식재료 중 반드시 필요한 소금과 각종 장류를 보관하는 장소였다. 〈동궐도〉에 그려져 있는 장독대는 모두 네 곳으로, 창경궁 통명전터 남쪽과 서쪽, 자경전의 동쪽, 창덕궁의 선정전 서북쪽 등이다. 이 장독대들은 대나무로 된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거나 돌담 속에 자리하였는데, 이렇게 많은 질그릇(도기)과 식재료가 필요했던 것은 궁궐 안에서 숙식하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의례와 행사에 필요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16세기 중엽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궁중숭불도(宮中崇佛圖)〉에서도 사람키만한 질그릇(도기)이 전각 곳곳에 배치된 예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질그릇(도기)들은 식재료 보관용 또는 식수 보관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실제 궁궐에서 사용한 대형 항아리가 완형에 가깝게 출토된 사례를 경복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복궁은 권역을 나누어 복원이 진행되면서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중에서 경복궁 훈국군영직소지(訓局軍營直所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는 모두 4개의 층위가 확인되었는데, 경복궁 중건 이전 시기에 형성된 선대건물지(先代建物址)에서 대형의 질그릇(도기) 항아리가 땅에 묻힌 채 거의 완형으로 출토되었다. 이것들은 일렬로 배열되어 있어서 당시에 각종 식재료를 저장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조선시대 질그릇(도기)은 소형의 음식기인 자기, 즉 청자·분청사기·백자와 달리 중대형으로 크기가 크고 식재료를 보관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저장에 최적화하기 위해 땅에 질그릇(도기)을 묻어서 사용한 사례가 실제 유적조사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더불어 문헌자료와 회화자료를 통해서도 질그릇(도기)의 쓰임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처럼 자기만으로 고려시대 이후의 식생활문화를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질그릇(도기)과 같이 살펴보아야 당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사료

  • 『經國大典』
  • 『宣和奉使高麗圖經』
  • 『慵齋叢話』
  • 『朝鮮王朝實錄』

단행본

  • 안휘준 외, 2005, 『동궐도 읽기』,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이종봉, 2016, 『한국 도량형사』, 소명출판
  • 한복진, 2005, 『조선시대 궁중의 식생활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
  • 한혜선, 2019, 『고려 질그릇(도기) 연구』, 역락

도록 및 보고서

  • 京畿文化財硏究院, 2014, 『高達寺址 Ⅲ-여주 고달사지 6·7차 발굴조사 보고서』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09, 『고려 뱃길로 세금을 걷다』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0, 『800년전의 타임캠슐』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0, 『태안마도 1호선 수중발굴조사 보고서』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1, 『태안마도 2호선 수중발굴조사 보고서』
  •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12, 『태안마도 3호선 수중발굴조사 보고서』
  • 호암미술관, 1996, 『朝鮮前期國寶展』

논문

  • 한혜선, 2012,「문헌기록을 통해 본 瓦器·陶器·甕器의 用例와 상호관계」, 『역사와 담론』 64, 湖西史學會
  • 한혜선, 2012, 「마도 1·2호선 出水 고려시대 질그릇(도기)의 용도와 量制」, 『해양문화재』 5,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 한혜선, 2013, 「조선시대 왕실 소용 질그릇(도기)의 제작 시고」, 『동아시아 궁중미술』, 한국미술연구소
  • 한혜선, 2017, 「한양도성 내 조선전기 문화층 출토 매납질그릇(도기)의 종류와 특징」, 『陶藝硏究』 26,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 한혜선, 2018, 「조선전기 경기지역 부장(副葬) 질그릇(도기)(陶器)에 나타난 신구(新舊)요소의 공존양상」, 『한국문화연구』 35,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한혜선, 2021, 「조선 영조대 연향의궤 속 질그릇(도기)의 용도와 조달방식」, 『한국문화연구』 40,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 한혜선, 「Utilization of Earthenware Pottery for Food Storage in the Goryeo Period」,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Volume 24 Number 1 (June 2021), Academy of Korean Studies
  • 한혜선, 2021, 「여주 고달사지 출토 도자기의 소비양상」, 『고달사지 발굴조사의 성과와 향후과제』, 여주시·경기문화재연구원 여주 고달사지 학술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