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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우리 문화와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으나 대부분 시대별로 간략히 서술되어 그 개념과 변천 과정, 성격 등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영상 문화·예술이야기>는 한국사 속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주제별로 그 흐름과 변천 과정, 특징과 성격 등을 전문가의 해설을 기반으로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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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와 토용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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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 이병호
조선시대 회화 조규희
한국의 성 서정석
불사 이기선
음악 송지원
도성과 왕궁 박순발
고려청자 전미희
김소남
조은정 윤종원 김미현 (주)투와이드 컴퍼니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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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박정민
복식 이은주
사찰건축 이종수 최광석 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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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손환일
지도 양보경
동종 김소남
임천환
원보현 윤종원 배수영 (주)투와이드 컴퍼니 2018
서원 조재모
세종대 천문기기와 역법 정성희
제지술과 인쇄술 이재정
통신사행렬도 정은주 최광석 김미현
한글소설 유춘동
화폐 정수환
석빙고 임천환
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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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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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륜
김치 김혜숙 윤종원 나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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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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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신병주 김기원 나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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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조재모 윤종원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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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조재모 김기원 한정옥 스토리라인 2022
전통정원 소현수
조선왕조실록 강문식
칠공예 최영숙 신정화 김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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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무용 손선숙 문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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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고려 불화의 백미로 꼽히는 '수월관음도' 한 점이 일본으로 유출됐다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160여 점만 남아 있고 국내에는 남아있는 예가 많지 않은 진귀한 문화유산입니다.
700년이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름답게 보존된 고려불화의 생명력은 매우 놀라운데요.
알면 알수록 놀라운 고려불화의 세계,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최고의 예술성 고려불화, 700년을 견디는 비밀은?

5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려는 불교 문화가 가장 빛났던 시대입니다.

불화: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

그중에서도 그림으로 불교세계를 표현한 불화가 눈부시게 발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수월관음도: 보타락가산의 관음보살과 선재동자의 모습을 주제로 그린 불화

불교의 경전 속 내용이 주를 이루는 불화 중에서도 수월관음도는 고려 시대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 중 하나입니다.
보타락가산에 머무는 관음보살과 진리를 구하는 선재동자의 모습을 기본으로 합니다.

1310년에 제작된 ‘수월관음도’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뮤지엄에 전시됐을 때 당시 신문기사에선 ‘모나리자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최고의 찬사를 했습니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고려불화만이 가진 특징에 힌트가 있습니다.

고려불화의 특징 1 안정적인 구도, 우아하고 섬세한 표현력
고려불화의 특징 2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기법

안정적인 구도와 편안한 자태가 눈길을 사로잡고 관음보살의 우아한 얼굴 표정과 섬세한 표현력이 돋보이는데요.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기법은 독보적인 예술성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고려불화는 어떻게 제작했을까요?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 화려한 색채의 비밀은 바로 재료에 있습니다.
놀랍게도 고려불화는 몇 가지 색상만을 사용해 풍부한 색을 표현하는데요.

천연 광물을 갈아 가루를 만든 후 동물 가죽에서 추출한 접착제인 아교물과 섞어 안료를 만듭니다.

안료의 농도에 따라 진한 색에서 옅은 색까지 채색하는데요.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색깔 표현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찬란한 금색이 조화되어 화려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배채법(복채법): 비단 그림의 뒷면에 채색을 해 그것이 앞면에 반투명 상태로 비치게 하는 채색방식

고려불화의 제작 기법도 특별합니다.
바로 배채법, 또는 복채법이라 부르는데요.
비단의 뒷면에 물감을 칠해 앞으로 비추게 하는 기법입니다.
앞에서 색을 칠할 때보다 은은하게 표현되고 안료가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는 탁월한 기능도 있습니다.

고려불화의 진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작은 원 안에 1~2mm 남짓의 세밀한 나선, 살짝 내려뜬 눈의 눈썹과 잔털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특히 관음보살이 몸에 걸치고 있는 옷감의 표현은 감탄을 불러 일으킵니다.
투명함을 표현하기 위해 1㎜도 채 안 되는 가는 실선을 붓으로 계속 덧 그려 넣는 방식으로 그려졌는데요.
현대에서 재현해내기 어려울 정도의 세밀함을 보여줍니다.

꼼꼼하게 그려진 다양한 문양도 고려불화의 정교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요.
무려 12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식물과 동물을 비롯해 구름과 파도 같은 문양이 다채롭습니다.

이처럼 고려불화는 금색을 비롯한 고급 안료를 사용하고 전문 화원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정교한 기법이 특징인데요.
왕실이나 귀족, 관인, 고위승려, 일반 신도들이 지원해 제작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고증된 사극 속 복식
최대한 고려 시대의 시대상을 참고해 고려인이 입었던 옷과 장신구를 재현해냈는데요.

“ 문헌 기록이나 고려도경 통해 재구성은 할 수 있지만 사실적으로 어떠했는가는 고려불화 속에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왕이나 왕실 내명부, 그 다음에 시녀들, 이런 사람들의 복식을 통해서 고상한 색상과 옷 모양을 보면서 고려 시대의 복식이 어떠한가를 재구성해주고 있어서 고려불화가 고맙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임명미 교수 / 동덕여대 명예교수

당시의 모습이 담긴 불화를 통해 고려 시대의 삶을 만나볼까요?

불화, 고려 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고려불화는 고려 시대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담고 있어서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유산인데요.

불교의례에 사용했던 연화모양향로는 고려 시대 대표적인 금속공예품으로 고려불화 속에서 똑같은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깨끗한 물을 담는 정병인데요.
불화 속에 많이 등장하는 정병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이처럼 고려불화는 실물을 모델로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물도 마찬가집니다.
고려 왕궁의 모습을 본 따서 불화에 궁궐을 표현했습니다.

지붕과 기둥 사이를 받쳐주는 공포와 화려한 난간으로 장식된 팔작지붕, 그리고 지붕장식들이 세밀하게 표현됐습니다.
자세히 보면, 건물의 공포 부분과 봉정사 극락전 닫집의 공포가 닮았습니다.

고려인들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에도 고려불화는 중요한 사료가 됩니다.
옷을 보면 신분의 차이가 있었는데요.
신분이 높을수록 비단옷과 화려한 수로 장식하고 높게 올린 머리에다 장신구도 화려합니다.
반면 시녀 같은 낮은 신분은 단순한 색과 간소한 댕기 차림입니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고려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색이 찬란한 채조(采條)로 금탁(金鐸)을 매달고 향을 넣은 금낭(錦囊)을 찼으며, 이러한 패물(佩物)을 많이 찰수록 자랑스럽게 여겼다. -서긍의 고려도경 中

고려불화는 사라져간 고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불화는 고려의 뛰어난 불교문화를 대표한다.
2. 고려불화는 왕실과 관인, 승려, 일반신도가 후원해서 제작됐다.
3. 고려불화가 가진 아름다움의 비결은 천연안료와 배채법이다.
4. 고려불화는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해설

고려불화는 불교국가였던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품으로서, 고려불화의 찬란한 금니(金泥)와 선명한 원색이 어우러진 채색기법, 정취하면서도 유려한 필선,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형태 등은 동아시아 불교회화사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려 시대에 3천 5백여개의 사찰이 건립되었으며 개경에만도 70여 개의 사찰이 건립되었던 사실, 고려 500여 년간 무려 1천여 회가 넘는 불교의식이 행해졌던 사실을 보면 고려 시대에 조성된 불화의 수가 상당히 많았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작품이나 기록은 얼마 되지 않는다. 현존하는 작품은 160여 점인데, 대부분 일본을 비롯하여 유럽, 미국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 국내에서는 세계적으로 명성높은 고려 불화를 쉽게 볼 수 없다.

918년 6월 고려를 건국한 태조 王建은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도읍한 직후 법왕사(法王寺)·자운사(慈雲寺)·왕륜사(王輪寺)·내제석원(內帝釋院)·사나사(舍那寺)·보제사(普濟寺)·신흥사(新興寺)·문수사(文殊寺)·원통사(圓通寺)·지장사(地藏寺) 등 10대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이후에도 해마다 꾸준히 사찰을 건립하였다. 이들 사찰은 대부분 왕실의 진전사원(眞殿寺院), 즉 원주(願主) 생전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사망한 선조의 명복을 비는 원당(願堂)이었다.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를 비롯하여 역대 왕의 기일재(忌日齋)를 비롯한 다양한 법회와 도량이 모두 이곳에서 시행되었다. 사찰에서 불교 의식을 행할 때는 대부분 불화를 봉안하고 의식을 행하였으며 “대소사찰(大小寺刹)에도 모두 법회를 개설하였는데 심지어는 천일, 만일 기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리하여 서울〔開京〕과 지방의 국고가 고갈되고 사람들이 모두 원망하였다” 는 기록은 고려 시대에 얼마나 많은 법회가 개최되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에 따라 법회용 불화가 상당수 제작되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아미타불화(阿彌陀佛畵), 관음보살화(觀音菩薩畵), 지장보살화(地藏菩薩畵) 등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그 외에 나한화(羅漢畵), 미륵하생경변상도(彌勒下生經變相圖), 석가불화(釋迦佛畵), 약사불화(藥師佛畵) 등이 약간 남아있다. 수명장수와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아미타신앙 계통의 불화들, 즉 아미타도와 관음보살도, 지장보살도 등이 유난히 많다고 하는 사실은 당시 고려사회의 불교신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거란과 몽고, 왜구 등 외적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던 고려사회에서 현세구복적인 관음신앙과 극락정토로 맞이해가는 아미타신앙, 그리고 사후 지옥의 무서운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괴롭고 불안한 현세를 이겨낼 수 있는 진통제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게다가 전란으로 인해 죽은 부모와 친척 등의 명복을 빌고 영가(靈駕)를 천도하는 데에는 극락왕생을 보장해주는 아미타정토신앙이 가장 인기가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정토계 불화가 다수 제작되었으며, 특히 왕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내영하는 아미타여래를 그린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가 즐겨 그려졌다. 그렇지만 기록에 의해보면 고려 시대에는 비단 아미타계 불화 뿐 아니라 석가모니불화와 나한도, 달마도, 조사진영 등도 많이 제작되었던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고려불화는 먼저 구도면에서 협시를 동반한 예배도의 경우, 화면을 상하2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본존인 주인공을 크게 강조하여 그리고 하단에는 대좌를 중심으로 협시들을 배치하는 이른바 2단구도(二壇構圖)를 취하고 있다. 고려불화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색채와 문양이다. 색채는 밝고 은은한 색조가 전면적으로 묘사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체로 붉은색과 초록색, 흰색, 밤색, 감청색 등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여기에 찬란한 금색이 조화되어 화려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료는 주(朱)와 녹청(綠靑), 군청(群靑)이 대부분으로, 모든 여래의 가사 바탕에는 주(朱)로 전면을 칠하고 대의에는 녹청, 치마에는 군청을 사용하였다. 특히 금색을 비롯한 몇몇 색들은 화면의 뒤에서 색을 칠하여 앞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복채법(伏彩法)으로 설채하여 색채가 은은하면서도 박락이 거의 없어 오늘날까지도 고려불화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해준다. 본존을 비롯한 인물들은 대부분이 꼼꼼하면서도 화려한 무늬가 시문된 옷을 걸치고 있다. 붉은 바탕의 법의에 묘사된 커다한 원문, 옷깃에 표현된 많은 식물문양들, 관음보살의 투명한 사라에 시문된 꼼꼼한 문양들은 색채와 더불어 고려불화의 아름다음을 한껏 보여주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문양은 연화문(蓮華文)과 연화당초문(蓮華唐草文)ㆍ보상화문(寶相華文)ㆍ보상당초문(寶相唐草文)ㆍ국화문(菊花文)ㆍ국당초문(菊唐草文)ㆍ모란당초문(牡丹唐草文)ㆍ초화문(草花文)ㆍ당초문(唐草文) 등 식물문양이 대부분이지만 그 외에 운문(雲文)ㆍ운당초문(雲唐草文)ㆍ운봉문(雲鳳文)ㆍ극락조문(極樂鳥文)ㆍ칠보문(七寶文)ㆍ연주문(連珠文)ㆍ금문(錦文)ㆍ구갑문(龜甲文)ㆍ공포문(栱包文)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120여 종류에 달하며 다양한 문양의 세계를 보여준다. 각종 문양은 표현되는 장소에 따라 종류가 다르다. 여래의 대의에는 연화당초문, 하의인 군의(裙衣)에는 타원형의 연화문과 연화당초문이 사용되었으며, 수월관음도의 군의에는 귀갑문과 연화하엽문, 베일에는 마엽문(麻葉文)을 바탕으로 하여 운봉문과 연화당초문이 사용되었다. 인물의 형태는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근엄하거나, 또는 풍만하고 우아한 경향이 있다. 얼굴은 대부분 둥글며 넓은 이마, 가늘고 긴 눈썹, 아담한 코, 두터운 턱, 큰 귀와 두툼한 귓불, 짧은 목 등이 특징이다. 필선은 단단하고 힘 있는 선, 유려하고 활기차며 세련된 선, 구불거리는 선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초기에는 원만하면서 힘 있는 선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14세기에 이르러 날카롭게 변하는 경향이 있고,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듯한 소위 오대당풍적(吳帶當風的) 경향까지도 보인다.

고려 시대 불화를 그린 화가들은 크게 왕실화원과 화승(畵僧, 불화를 그리는 승려)으로 나눌 수 있다. 고려불화는 상당부분 국가 소속의 화원들에 의해 그려졌던 것 같다. 개경의 왕실사원과 귀족들의 원찰, 혹은 궁중에서 행해지는 법회나 도량에 필요한 불화가 많았던 것을 보면 화원에 의한 불화제작이 얼마나 성행했는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323년 제작 관경변상도(일본 치온인知恩院 소장)에는 ‘화공(畵工) 설충과 이○(李○)’이라고 적혀있어, 설충과 이○은 도화원의 화원 또는 관립 불화 공방의 전문 화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도화원 혹은 화국에 소속된 화원이 있었는가 하면 문한서(文翰署, 또는 藝文館)나 액정국(掖庭局) 소속 화원도 있었던 듯하다. 1294년 미륵하생경변상도(일본 묘만지妙滿寺 소장)를 그린 이성(李晟), 1310년 수월관음도(일본 가가미진자鏡神社소장)를 그린 김우·이계동·임순동·최승, 1323년 수월관음도(일본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를 그린 서구방, 1323년 관경16관변상도(일본 린쇼지隣松寺 소장)를 그린 서지만 등은 문한서 또는 내알사 소속의 왕실화원으로 추정된다. 불교가 번창함에 따라 불화를 그리는 승려, 즉 화승의 역할도 커졌다. 현재 고려 시대의 화승은 20여 명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전국의 사찰에 봉안하는 수많은 불화를 그렸던 화승은 이보다도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화의 화기에 기록된 화승으로는 1286년 아미타내영도를 그린 자회(自回), 1307년 아미타구존도(阿彌陀九尊圖)를 그린 노영(魯英), 1350년 미륵하생경변상도(彌勒下生經變相圖, 일본 신노인親王院 소장)를 그린 회전(晦前), 수월관음도(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를 그린 혜허(慧虛) 등이 알려져 있다.

고려불화 가운데 명문이 남아있는 작품은 30여 점이고, 이 가운데 20점에 발원 시주자가 알려져 있다. 왕실· 무신 등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을 비롯하여 승려, 향도,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발원자 혹은 시주자로 참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불화는 대부분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양병(禳兵) 혹은 수명장수, 정토왕생 등을 기원하며 조성되었으며, 개인 혹은 여러 명이 함께 발원 조성하였다. 고려후기에는 기복불교(祈福佛敎)가 성행하면서 점차 절과 탑을 세우고, 경전을 베껴 쓰며, 불상을 모시는 행위가 모두 공덕을 쌓는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됨에 따라, 경전을 서사하거나 불상, 불화 등을 조성하여 복을 빌고 현세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불교의 성격이 곧 불화의 발원 시주로 이어졌음을 말해준다. 또 발원자 계층 가운데에는 고려전기의 문벌귀족을 대신하여 고려후기에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새로 등장한 권문세족(權門勢族)도 보이는데, 염승익을 배출한 서원 염씨 집안과 숙비 김씨를 배출한 언양 김씨집안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왕실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불화를 조성한 사실은, 불교가 상하계층을 막론하고 생활 속의 종교로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고려불화 속에는 고려인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궁궐과 사찰 건축, 법구뿐 아니라 왕과 왕비·서민·승려들의 모습까지도 그려져 있어 사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가진다. 불화는 물론 종교화이기 때문에 불·보살의 착의법은 일반인들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몇몇 불화에는 왕과 왕비 및 일반 서민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어 당시 고려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왕과 태자는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를 입었으며, 관리들은 복두(幞頭)에 자주색 혹은 백색의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또한 왕비는 높게 올린 머리에 금화(金花)로 화려하게 장식한 화관을 쓰고 아름다운 자수를 놓은 옷을 입고 있어 화려하면서도 왕비로서의 기품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귀부인들은 높은 머리에 금화 장식(金花裝飾)을 하고, 위에는 저고리를 입고 띠를 매었는데, 띠에 주머니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아래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치마를 입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고려인들의 생활문화를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을 펴낸 서긍이 본 모습과도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또한 화려한 건물의 모습은 고려 시대 건축이 중국 원나라 건축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고려만의 특징적인 건축을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공포와 난간으로 장식된 화려한 팔작지붕의 중층건물은 잡상과 치미로 장식되었고, 전각 내 닷집은 봉정사 극락전의 닷집과도 닮아있다.

화려한 색채와 치밀한 구성으로 불교의 오묘한 진리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고려불화는 문치주의를 숭상하고 귀족문화가 성행했던 고려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는 듯 하다. 고려불화는 고려 시대, 더 나아가 우리나라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고려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저서

  • 김정희, 2009, 『찬란한 불교미술의 세계, 불화』, 돌베개
  • 문명대, 1991, 『高麗佛畵』, 열화당
  • 문명대, 1979, 『韓國의 佛畵』, 열화당
  • 정우택, 1990, 『高麗時代 阿彌陀畵像の硏究』(日文), 永田文昌堂
  • 홍윤식, 1984, 『高麗佛畵의 硏究』, 同和出版公社

도록

  • 기쿠타케 준이치(菊竹淳一)ㆍ정우택 편, 1996, 『高麗時代의 佛畵』, 시공사
  • 이동주 감수, 1980, 『高麗佛畵』 韓國의 美 7, 중앙일보사
  • 호암갤러리, 1993, 『高麗, 영원한 미-高麗佛畵特別展』
  • 호암갤러리, 1995, 『大高麗國寶展-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1)』
  • 기쿠타케(菊竹淳一)ㆍ요시다 히로시(吉田宏志) 편, 1981, 『高麗佛畵』,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
  • 야마구치현립미술관(山口縣立美術館), 1997, 『高麗ㆍ李朝の佛敎美術展』

논문(국문)

  • 가와하라 요시오(河原由雄), 1993, 「日本에 있는 高麗 佛畵의 位置- 高麗·朝鮮 觀經變相의 展開를 中心으로」, 『高麗, 영원한 美-高麗佛畵特別展』, 호암갤러리
  • 강인선, 2015, 「일본 妙滿寺(묘만지) 소장 1294년명 〈彌勒下生變相圖〉 연구」, 『佛敎美術史學』19, 佛敎美術史學會
  • 강희정, 1994, 「高麗 水月觀音像圖의 연원에 대한 재검토」, 『미술사연구』8, 미술사연구회
  • 고승희, 2000, 「高麗佛畵의 佛衣 紋樣 硏究(上)」, 『강좌 미술사』15,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고승희, 2004, 「高麗佛畵의 佛衣 紋樣 硏究(下)」, 『강좌 미술사』22,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고승희, 2006, 「서구방필 수월관음도 문양을 통해 본 유파 연구」, 『강좌 미술사』26,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권희경, 1978, 「高麗의 地藏菩薩畵 - 日本 蓮地善導寺所藏과 根律美術館所藏의 地藏畵를 中心으로」, 『동양문화연구』5, 경북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 기쿠타케(菊竹淳一), 1996, 「高麗佛畵의 特性」, 『高麗時代의 佛畵』, 시공사
  • 김경미, 2007, 「高麗 水月觀音圖 베일의 鳳凰紋 考察」, 『불교문화연구』6, 한국불교문화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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