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문화·예술 이야기
고려청자

낙양의 꽃,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의 자기, 절강의 칠기, 오의 종이…
고려비색…
모두 천하제일인데 다른 곳에서는 따라 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송나라 태평노인의 [수중금(袖中錦)] 천하제일(天下第一)조에서

천하제일, 고려청자만의 비법은?

청자의 제작기법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서 전 세계에서도 중국과 고려에서만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 당시에 청자를 만들던 중국과 고려는 흙의 성질을 잘 이해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청자를 만들 수 있는 흙에는 산화철 성분이 일정 정도 포함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불을 어느 정도로 때야 되는지를 당시 장인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

조은정 학예사 / 고려청자박물관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한 고려청자의 뛰어난 제작 비법이 있었으니, 바로 푸른색을 내는 유약이었습니다.
고려청자의 푸른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한 색을 띠었는데요.

陶器色之靑者麗人爲之翡色
청자의 색을 고려인들은 비색(翡色)이라 부른다.

- 『선화봉사고려도경』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이 기록

그 색을 비취옥의 색과 비슷하다 하여 비취색, 또는 비색이라고 불렀습니다.

푸른 자기 술잔을 구워내 열에서 골라 하나를 얻었네.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속에 묻혔었나.

- 이규보(1168~1241), 『동국이상국집』 제8권

고려 시대 문인이었던 이규보도 좋은 청자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 푸른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시로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고려청자의 비색은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려청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기술이 또 있습니다!
네, 바로 상감기법입니다.

고려의 상감기법은 그릇의 표면에 도구를 이용해서 문양을 파낸 후, 그곳에 하얀색의 백토와 붉은 색의 자토로 채워 넣어 문양의 사실적인 느낌과 생동감이 느껴지게 하는 고도의 기술이었습니다.

또 청자의 형태나 문양을 동물과 식물의 모습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점도 고려청자의 특색입니다.

특히 고려청자에 많이 표현된 운학문 문양은 서정적인 표현과 구성 등을 보여주는 고려청자의 특징적인 요소입니다.
이는 당시 고려 사회의 도교적인 성향을 반영한 건데요.

고려의 중심이었던 불교와 도교 사상이 청자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고려청자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습니다.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보물선이 발견됐습니다!
고려 시대 때 침몰한 이 배에는 약 2만 3천 점의 고려청자가 쌓여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태안 앞바다에서는 수많은 고려청자들이 발견됐는데요.
대부분 전라남도 강진과 내륙에서 제작한 청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수많은 고려청자가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걸까요?

고려청자가 바다로 간 까닭은?

청자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흙인데요.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 해안가에 청자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흙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의 청자는 품질이 우수해서 주로 왕실의 청자로 사용되었는데요.

특히 강진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청자 가마터들이 있고 ,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장기간 운영된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각 지역의 곡물과 특산물 등을 세금으로 걷어 수도인 개경에 납품을 했는데요. 청자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육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운반이 쉽지 않아 해안가에 13개의 조창을 설치하고 선박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개경까지 운반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해안은 조류가 빠르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서 선박이 좌초되거나 침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청자가 많이 발견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난파선에서는 당시 시대상과 유통과정을 알 수 있는 목간들이 발견됐는데요.

耽津縣(옛날 강진, 생산지) 在京(개경, 수송지) 隊正仁守戶(수취인) 付 砂器八十(그릇 수량)

생산 지역부터 수송지, 수취인, 수량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또 당시 청자를 어떻게 포장해서 운반했는지도 알 수 있는데요.
큰 항아리에 짚을 깔고 넣은 고급 청자부터 30~40개를 포갠 후 새끼줄로 고정시킨 하품의 청자들도 많았습니다.

마도2호선에서 발굴된 고려청자매병에는 대나무 화물표가 매달려 있었는데요.

중방도장교오문부/택상진성준봉(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眞盛樽封)

중방도장교오문부/택상정밀성준봉(重房都將校吳文富/宅上精蜜盛樽封)

모두 개경의 중방 소속이었던 오문부라는 하급무관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꿀(精蜜) / 참기름(眞)

오문부의 집으로 꿀과 참기름을 매병에 담아 보낸다는 내용인데요.

그동안 매병은 술이나 물을 담는 그릇으로 생각했지만, 이 기록을 통해서 매병에 꿀과 참기름 등 귀한 식재료를 보관하고 운반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외에도 고려청자는 그릇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용품들과 고급 청자기와, 벽과 바닥을 장식한 판까지 그 형태나 종류도 다양하고 화려했습니다.

처음엔 중국에서 수입됐지만 독자적으로 최고의 청자유약 기술을 개발하고 또 신비로운 비색과 독특한 문양을 창조해낸 고려청자!
바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고려청자는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천하제일이라고 칭송했다.
2. 고려청자의 푸른색을 비색(비취색)이라고 부른다.
3. 고려청자만의 독창적인 문양기법은 상감기법이다.
4. 각 지역의 청자는 주로 서해 바다를 통해 개경까지 운반됐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