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는 빈곤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가족 계획 사업을 통하여 인구 증가를 억제하고자 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가족 계획 사업은 쿠데타 직후인 1961년부터 시작되었다. 1962년 재건 국민 운동 본부 안에는 가족 계획 상담소가 설치되었으며, 1963년 초에는 전국 29,000여 명의 국민 운동 요원들에게 가족 계획에 관한 특별 교육을 실시하였다. 1960년대의 가족 계획 사업도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으로 통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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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가족 계획 면민 대회
‘둘 낳기 운동은 가정이 윤택해진다.’, ‘가족 계획 실천하여 국가 번영 이룩하자.’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개인 소장(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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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림리 가족 계획 상담소
가족 계획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던 1964년,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가족 계획 상담소 앞에서 면장이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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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계획 홍보 행사(1)
둘 낳기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거리 공연. 경기 안양시 안양1동 개인 소장(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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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계획 홍보 행사(2)
경기 안양시 안양1동 개인 소장(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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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계획 홍보 행사(3)
경기 안양시 안양1동 개인 소장(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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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계획 홍보 행사(4)
경기 안양시 안양1동 개인 소장(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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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장
가족 계획 사업을 잘 수행한 마을 이장(안양3리 이장)에게 수여된 표창장. 경기 안양시 안양3동 개인 소장(19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