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본 한국사한국의 건국 신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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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에서 고대 초기에는 다수의 국가와 왕조가 등장하고 멸망해 갔다. 이 국가들은 각자 저마다의 건국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 상당수가 후세에 전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제법 풍성한 고대의 건국 신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 건국 신화를 통하여 국가를 건설해 가는 과정은 물론, 거기에 반영된 고대인들의 세계관에 대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건국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나 ‘설화’의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그 자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또한 건국 신화는 국가를 건설한 지배층이 내세우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과장과 허구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건국 신화는 한번 형성되고 나면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전승 과정에서 여러 형태로 변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현재 전해지는 건국 신화가 처음 형성될 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건국 신화를 통하여 여러 고대 국가 건국의 역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법 까다로운 눈과 신중한 태도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본 글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를 살펴보려는 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건국 신화 자체가 매우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짧은 분량으로 많은 것을 다루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 글은 특히 ‘건국 신화 읽기’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단군 신화나 주몽 신화, 또는 박혁거세 신화 등 고대 신화의 줄거리를 대체로 잘 알고 있으며, 개중에는 그런 신화의 한 대목쯤은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건국 신화의 전승이 매우 다양하며, 흔히 알고 있는 신화의 내용 이외의 다른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는 점은 의외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신화의 내용 중에서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에 가깝고, 어느 부분이 일종의 ‘신화적 장치’인지 판단하기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우리 고대 신화의 다양한 전승을 직접 읽어 보고, 그 속에 담긴 역사상을 추적해 보려는 의도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건국 신화를 읽기 전에 신화를 해석하는 몇 가지 전제를 먼저 짚어 보도록 하자. 이미 앞에서 간략히 언급한 바 있지만, ‘신화를 바라보는 태도’가 이 글에서는 매우 중요하므로 다시 한 번 언급하도록 하겠다.

첫째, 건국 신화는 건국기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건국 신화는 ‘신화’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의도적으로 신비로운 측면을 강조하기 위하여 ‘신화’적인 내용을 강조하기 때문에, 건국 신화의 내용 그대로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특히 ‘신화’로 구성하려는 목적이 건국 신화를 생산한 집단의 권위와 정통성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기 위해서라면, 건국 신화 자체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과장과 왜곡이 잠재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어느 국가의 건국 신화가 반드시 그 국가가 건국되는 시점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 국가의 체제가 정비되고 통치가 안정된 시점에 건국 신화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다고 해서 건국 신화의 내용이 모두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건국기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이 전승되어 오다 이후 만들어지는 건국 신화에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국 신화를 통해서 고대 국가 형성기의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신화는 허구가 아니다.’라는 전제도 중요하지만, 고대 국가의 지배층이 시조 전승에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정착시켰던 부분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겠다.

둘째, 이렇게 형성된 건국 신화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시대가 흐르면서 정치적 환경의 변화 등 현실적 필요에 따라 다시 바뀌거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투영되어 새로 꾸며지기도 한다. 즉 현재 남아 있는 건국 신화는 건국기 혹은 건국 신화가 만들어졌을 때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건국 신화가 언제 정리된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요소들이 추가되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후대에 윤색된 내용들이 걸러질 때 원형에 가까운 건국 신화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각 나라의 건국 신화는 여러 형태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건국 시조를 서로 다르게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군 신화나 주몽 신화처럼 하나의 건국 시조임에도 내용상 서로 다른 전승이 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건국 신화의 전승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변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다양한 전승 자료를 서로 비교 검토할 때 비로소 건국 신화의 본모습이나 거기에 투영된 관념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우리나라 건국 신화의 공통된 특징에 대하여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는 국가의 창건을 주도한 개국 시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엄격히 말하자면 건국 시조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건국 신화에 나타나는 시조는 공통적으로 천상(天上)적인 속성을 지닌다. 구체적으로는 천부 지모(天父地母)형과 천남 지녀(天男地女)형으로 나누어진다. 천부 지모형은 천상적 존재와 지상적 존재의 신성 혼에 의하여 탄생하는 경우로, 단군 신화와 주몽 신화가 대표적이다. 천남 지녀형은 하늘에서 하강한 운반체에 의하여 스스로 태어나는 경우로, 시조의 부모가 신성 혼을 거치지 않고 ‘하강한 개체에서 탄생’하거나 혹은 ‘스스로 탄생’한 뒤 자신이 지상적 존재의 신성한 여성과 혼인하는 내용이다. 신라의 박혁거세 신화와 가야의 수로 신화가 이에 해당한다. 지역으로 볼 때 천부 지모형은 북방 지역 신화, 천남 지녀형은 남방 지역 신화이다.

이러한 몇 가지 점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를 하나씩 차근차근 살펴보자.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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