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형정도의 특징
김윤보의 형정도는 범죄 단속에 대한 기본 정보뿐 아니라 사건의 전후 정황을 짐작할 수 있도록 배경을 묘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도2〉는 그림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어른(존장)의 의관을 망가뜨리고 구타한 무뢰 소년을 잡아들이는 그림이다. 특히 포졸에 포박되는 범인 뒤로 찢어지고 끈 떨어진 흑립을 매만지는 피해 노인을 묘사함으로써 사건 전후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도록 인물을 배치하였다.
〈도3〉은 포교가 도박 현장을 급습하는 장면으로 도박에 가담한 인물의 머리 모양을 망건, 상투, 민상투 등 다양하게 묘사해 당시 도박이 신분을 초월해 유행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림의 구도가 사립문 밖에서 2명의 포교와 담을 넘어 들어가는 포교를 적절히 배치하여 긴박한 단속 상황을 실감나게 한다.
형정도에는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예컨대 〈군수초달죄녀(郡守楚橽(撻)罪女)〉는 여성 죄수를 태형으로 처벌하는 장면인데, 태형⋅장형은 형판(刑板)에 엎드린 죄수의 볼기를 때린다는 상식과 달리 이 그림에서는 여성 죄수가 형틀 위에 올라선 채 회초리를 맞는 이채로운 광경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한 형정도는 문헌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고문 기술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고문에 관한 그림 중 문헌을 통해 비교적 잘 알려진 곤장, 신장, 주리, 압슬 등 일반적인 고문에 대한 그림도 있지만, 문헌 자료에서 찾을 수 없는 그림도 있어 형정사 연구 자료로써 의미가 있다. 고문은 〈사죄인학무(使罪人鶴舞)〉, 〈안피지쇄수이살(顔被紙灑水而殺)〉, 〈비공입탄수(鼻孔入灰水)〉, 〈궤슬방두(跪膝方斗)〉, 〈금부난장(禁府亂杖)〉, 〈피점난장타살(被苫亂杖打殺)〉 등이 있다. 고문 기술은 매달기, 물고문, 집단 구타, 쌀되(방두)에 무릎 꿇리기 등 잔인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한편 김윤보의 『형정도첩』에는 의금부, 포도청, 지방 관아, 전옥서 등 여러 형정 기관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대체로 다른 문헌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그림의 정보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다. 예컨대 〈도4〉에 배경으로 그려진 포도청의 옥사 구조가 일제 강점기에 서대문 형무소 소장을 역임했던 일본인 나카하시 마사요시(中橋政吉)가 포도청의 옥사를 답사하고 그려둔 평면도와 일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와 같이 두 그림의 위치가 각각 정면과 측면으로 그린 각도는 다르지만, 건물 아래 부분의 벽돌 구조와 중간의 흙벽, 그리고 윗부분의 창살 등의 외관 구조가 거의 일치하여 동일한 건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의 형정풍속도에 등장하는 장소와 내용이 사실에 근거하여 그렸다는 객관성이 어느 정도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