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로 보는 한국사고종과 대한제국의 개혁과 좌절

1. 고종과 대한제국의 시기 개관

대한제국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완전한 자주 독립권을 지켜나가기 위해 밖으로 열강의 세력균형을 도모하고 안으로 고종 황제 중심의 내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1897년 10월 조선왕조 제26대 국왕인 고종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였다.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조치로서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를 1899년 8월에 제정⋅반포하였다.

고종 어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국립 중앙 박물관

대한제국기에는 황실 중심의 근대화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개혁사업은 양전(量田)⋅관계 발급 사업(官契發給事業)이라는 토지 조사 사업을 비롯해 서울의 도시 정비 사업, 일련의 식산흥업 정책과 황실 재정의 확충, 원수부(元帥府) 창설과 군사력 강화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광무 연간에 수행된 개혁이었으므로 연호를 따라 ‘광무개혁(光武改革)’이라고 한다. 그러나 광무의 연호를 쓴 기간은 1897년부터 1907년까지지만, 실제 개혁 기간은 1897년부터 1903년까지 한정된다. 1904년 러일 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하여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외교권을 빼앗기고 부당하게 보호국으로 되었으며, 결국 1910년 일본의 식민지 침략의 희생물로 전락하고 만다.

100여 년 전 대내외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연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와 민인들의 노력은 어떠하였을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으로 다가오는가. 이러한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주요 사건 연표

1896.2.11 아관파천
1897.2.25 경운궁 환궁
    3.23 교전소 설치
  10.13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 대한제국 선포
1898.4.3 독립 협회 의회 설립 토론회 개최
  10.28~29 관민 공동회 개최
  11.4 독립 협회 폐지 조칙
  12.16 중추원 1차 회의 개최
1899.5.22 중추원 관제 개정
    6.23 법규교정소 설치
    8.17 대한국 국제 반포
1904.2.8 러일 전쟁 발발
1905.5.29 형법대전 반포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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