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반탁 운동의 격화와 우익 내부의 동향
1945년 말과 1946년 초의 반탁 운동은 남한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우익 진영 일반, 그 중에서도 김구를 중심으로 한 임정 세력은 반탁 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우익은 신문을 앞세워 신탁 통치 주창자는 소련이며, 모스크바 결정을 찬성하는 공산주의자는 소련의 앞잡이이자 매국노이고, 반탁 운동은 즉시 독립을 위한 애국 운동이라는 등식으로 선전 활동을 전개하면서 반탁 운동을 반소⋅반공 운동으로 몰아갔다. 한민당은 반탁이라는 깃발 뒤에 숨어 친일파라는 비난을 피해 갔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복권을 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최대의 수혜자였다. 앞의 하지 장군의 지적처럼 우익은 반탁 운동으로 좌익과의 세력 불균형을 일시적으로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반탁 운동은 해방 이래 좌익에 비하여 조직적 열세를 면치 못했던 우익이 득세하고, 존스턴의 예언처럼 우익이 전국적 대표성을 가지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우익의 세력 만회가 우익 내 모든 분파에게 동일한 의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며, 반탁 운동이 우익에게 미쳤던 영향은 세력별로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차이는 우익 내부의 세력 관계와 주도권 다툼, 미 군정의 남한 정계 개편 구상 및 우익 세력 통합 구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